[박윤석의 시간여행]두 노벨 문학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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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방송 연설을하고있는윈스턴처칠영국총리.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방송 연설을하고있는윈스턴처칠영국총리.
 올해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 선정은 얼떨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으로 점점 바뀌어 가는 지구라지만 ‘노벨상에까지?’라고 갸웃하며 석연찮은 표정이 역력하다. 수상자 밥 딜런의 반세기 전 노래 제목 그대로 ‘전환기(The times they are a changing)’가 본격 진행 중이어서일까.

 문학인이라고 분류하기 뭣한 인물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대개 왕성한 인문학적 저술 활동을 벌인 석학들이어서 별 물의는 없었다.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다면 1953년의 경우다. 수상자는 윈스턴 처칠, 영국의 현역 총리였다.

 당시 한 언론은 ‘스웨덴의 학회는 그의 뛰어난 어법,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의 빛나는 웅변에 주목하였다’고 보도했다. 팔순 문턱에 이른 노정객의 문학상 수상 사유가 전쟁 중의 연설과 전쟁 후의 회고록 출간에 있음을 설명하면서, ‘필설(筆舌) 양면에 걸친 유려한 언어 구사로 반세기 이상 그의 찬미자들을 기쁨에 넘치게 하였다’고 소개한 것이다. 

 한국에서 6·25전쟁이 막 끝난 뒤였다. 12년 전 처칠은 독일의 공습을 받은 런던에서 BBC 라디오 연설을 통해 미국에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촉구했다.

 “히틀러는 처음엔 런던, 그리고 점차 다른 도시들까지 폭격하여 영국의 정신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나 살인과 테러리즘의 공갈 협박은 영국의 정신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장비를 주면 우리가 끝장내겠다.”

 그는 전쟁에 맞서는 영웅들로 국민을 꼽으며 변주곡처럼 거듭 말했다.

 “런던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시민들은 맹렬한 폭격을 견뎌 내야 했다. 폭격을 견뎌 낸 그들은 군복을 입지 않았다. 평범한 남성 여성 어린이들로 확고부동하게 함께 버티며 싸우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이 거둘 승리는 워털루의 승리보다 훨씬 더 위대할 것이다.”

 그 감동적 연설이 미국을 움직인 1941년 2월과, 미국이 일본의 기습 공격을 받은 그해 12월 사이에 밥 딜런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처칠이 노벨상을 받은 지 9년 뒤 첫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할아버지뻘인 처칠이 1940년대의 대전쟁과 부흥기의 구국 영웅으로서 항전(抗戰)과 용기를 북돋는 말과 글을 구사했다면 밥 딜런은 1960년대 이래 평화와 국지전이 공존하는 시대에 반전(反戰)과 개인의 고독을 일깨우는 음률(音律)과 운율(韻律)을 대중에게 전파한 셈이다. 63년 시차의 두 이례적 노벨 문학상이 갖는 끈이라면 끈이다.

 선망받는 60년대의 미국에 살면서 밥 딜런은 “너무 혼란스러운 세상이라 안식을 찾을 수 없어”(‘All along the watch tower’에서)라고 노래했다. 그의 데뷔 9년 뒤 한국에서는 그의 세례를 입은 포크 가수 1세대의 선두로서 김민기가 앨범을 내고 데뷔해 “누가 보았을까 저 부는 바람을/아무도 보지 못했지 저 부는 바람을”이라고 노래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인가. 대중을 외면하기도, 그렇다고 아부하기도 곤란한 세태에 도달한 것일까. 이런저런 물음을 뒤로하고 밥 딜런은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노랫말, ‘답은 떠돈다, 저 바람 속에’(‘Blowing in the wind’) 를 되뇌는 듯이. 그의 나이 75세. 한국 가수로는 이미자와 동갑뻘이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
#노벨 문학상#윈스턴 처칠#영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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