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겨울은 봄을 품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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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양기가 생겨난 때가 바로 봄의 처음이니 반드시 입춘에 봄기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네

一陽生處是春初 未必立春春始噓
(일양생처시춘초 미필입춘춘시허)

―유의건 ‘화계집(花溪集)’》
 

봄을 알리는 ‘입춘’은 음력으로 12월이나 1월에 있는데,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라 여전히 추위가 남아있다. 24절기상 첫 번째이며 봄의 시작이기에 다소 춥더라도 앞으로는 따뜻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이런저런 한 해의 출발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대문과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첩(帖)을 붙여 안녕을 기원하고, 보리뿌리를 뽑아보며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이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하는 등 한 해의 풍흉을 점쳐보기도 한다.

동양사상에서는 천지의 조화와 우주의 운행을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음의 기운은 추위와 어둠을 상징하고 양의 기운은 따뜻함과 밝음을 상징한다. 음과 양은 서로 순행하면서 음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양기가 가득한 한여름이 되었다가, 음기가 차츰 늘어나 다시 겨울이 되어 양기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에는 사라졌던 양의 기운이 다시 하나 생겨나 앞으로 다가올 봄의 씨앗이 된다. 추운 겨울 얼어붙어 황량한 들녘에는 아무런 생명도 없는 것 같지만 따뜻해져 땅이 녹으면 그 꽁꽁 얼었던 땅에서 싹이 돋아난다. 땅으로 솟아나는 싹은 봄이 되어야 볼 수 있지만 그 싹의 씨앗은 이미 겨울 땅에 잉태되어 땅을 뚫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절기가 변하듯이 세상사도 어찌 언제나 봄이겠으며 또 어찌 언제나 겨울이겠는가. 그리고 겨울을 거치지 않고 찾아오는 봄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동지에 잉태한 씨앗에서 출발하여 입춘의 봄이 왔으니, 이제 곧 꽃도 필 것이며 바람도 따뜻해질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디 걸릴 수도 있고 유난히 추울 수도 있지만, 겨울은 항상 봄이 오기 전에 먼저 봄을 간직하고 있다.

유의건(柳宜健·1687∼1760)의 본관은 서산(瑞山)이고, 호는 화계(花溪)이다.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과거시험은 보지 않았고, 서당을 지어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유의건#화계집#입춘#음양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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