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21>아들의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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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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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추첨 시간까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강당 맨 첫 번째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빈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기수 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강당 맨 끝 구석, 접이식 철제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정복을 입은 경찰관 한 명이 커다란 저금통 모양의 추첨함을 단상 정면으로 옮기는 것이 보였다. 교사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마이크 테스트를 하기 시작했다.

기수 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떨어진 한 사립 초등학교에 아들의 입학원서를 낸 것은 지지난 주 토요일의 일이었다. 그에겐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삼 년 전부터 아내 없이 혼자 키운 아들이었다.

아내 없이 혼자 키웠다고는 하지만 기수 씨는 아들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파트를 전문으로 짓는 건설회사의 계약직 배관공이었던 그는,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끼지 않고 꼬박꼬박 일곱 시까지 집에 도착했다. 그는 늘 아들과 함께 샤워를 했는데, 그때마다 샴푸 거품으로 아이 얼굴에 수염을 만들어주거나, 함께 하수구를 향해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는 아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유치원 때부터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아빠, 사랑에 실패하는 거 봤지?

그의 아들은 건강하고 모난 데 없이 잘 자라주었다. 음식 투정을 하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들처럼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며, 온 우주가 당장 멸망이라도 할 듯 떼를 쓰며 울지도 않았다. 하나,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일곱 살인데 아직 다른 유치원 친구들처럼 한글을 쓱쓱 쓰거나 책을 또박또박 읽지 못한다는 것. 유치원 선생도 알림장에 넌지시 그 사실을 걱정하는 말을 적어놓았다. 기수 씨가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아들을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마음을 먹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쨌든 거긴 공부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게 시킨다고 하니까.

기수 씨는 자신이 사립 초등학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학기 등록금이 이백만 원 조금 넘는 액수라는 것과,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수영장이 있고, 급식은 유기농으로만 제공된다는 것, 그것이 기수 씨가 알아본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입학원서 접수와 동시에 이루어졌던 교감과의 일대일 면담 후, 그는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산에 넣지 않았던 통학버스비와 특별활동비, 4학년 때부터 방학마다 가는 어학연수 비용과 다른 초등학교에선 입지 않는 교복의 가격 같은 것들. 아들한텐 이미 넌 사립 초등학교에 가게 될 거야, 우리 아파트 단지에선 아마 너만 그 학교에 다니게 될걸, 그렇게 말해놓았는데… 기수 씨는 자신의 말을 주워 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의 능력을 벗어나는 비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아들에겐 차마 내색할 수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입학 추첨날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경쟁률은 4 대 1이라고 했다. 아이가 직접 추첨함에서 공을 뽑고, 거기에 적힌 숫자에 따라 바로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는 형식이었다. 교장의 인사말이 끝난 후 바로 추첨이 시작되었다. 합격 번호를 뽑은 아이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있었는가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은 불합격 번호를 뽑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기수 씨의 아들은 ‘74’번이 적힌 공을 뽑았다. 불합격 번호가 적힌 공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수 씨와 그의 아들은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과 기수 씨 모두 시무룩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눈이 곧 흩날릴 듯 꾸물꾸물한 날씨였다.

아들이 먼저 기수 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그럼 저는 이제 아예 초등학교에 못 가는 건가요? 유치원 졸업하면 집에만 있는 거예요?” 기수 씨는 아들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아니야. 다른 초등학교 가면 돼.” “거기서도 공을 잘 못 뽑으면 어떡해요?” 기수 씨는 그 말에 아들의 손을 슬쩍 잡아주었다. “다른 덴 공을 뽑지 않아. 그냥 들어갈 수 있어.” 기수 씨의 말을 들은 아들은 잠깐 동안 끔벅끔벅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조금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냥 들어간다고요? 학교를요?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을 순 없는 거고요?” 기수 씨는 가만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아들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그러자 그의 마음도 조금 홀가분해졌다. 기수 씨는 장난식으로 아들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그의 아들은 캑캑거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정말 유치원만 졸업하고 쉬면 안 돼요? 네? 그렇게 해주면 안 돼요?”

이기호 소설가
#아들#바람#이기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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