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16>“저 옷 예쁘다”에 담긴 뜻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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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로버트 그린은 ‘유혹의 기술’에서 “암시를 하는 방법이 매우 간단하다”고 전한다. 우연을 가장해 평범한 말로 상대에게 힌트를 주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내가 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다가 감탄을 쏟아낸다. “어머! 저 옷 너무 예쁘다. 요즘 유행이던데.”

암시는 애매한 말로 상대의 감정을 묘하게 건드리는 기술이다. 아내가 던진 암시의 한 조각이 남편의 잔잔하던 무의식 호수에 퐁당 빠지면 파장의 동심원이 그려진다. 남편이 말한다. “응. 그러네.”

눈치 빠른 남편이라면 대답을 하면서 무의식에 만들어진 동심원의 크기를 잰다. 아내의 “예쁘다”와 “유행이던데”가 얼마나 갖고 싶음을 나타내는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여자의 암시는 심리 게임이다. 대다수 여성은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경우 남자의 방어 태세를 촉발해 블로킹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라면서도 ‘들이대는 여자’는 싫어하는 남자의 이중성을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사달라’고 했다가 난처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상대의 마음속에 살며시 자기의 바람을 심는 암시의 기술이다. “저 옷 사줄까?” 남편이 묻는다. 암시를 덥석 문 남편은 ‘사줄까?’를 자기 의견이라고 믿는다.

“아냐, 비쌀 텐데….” 아내가 싫지 않은 투로 대답하면서 남편을 따라 매장으로 들어선다. 이제 예쁜 옷은 아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사주고 싶어서 구입하는 모양새가 된다. 남편이 자기 의지로 흔쾌하게 선물을 해주는, 여성들이 그토록 부러워한다는 훈훈한 엔딩이다.

설령 암시가 남편의 행동을 촉발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아내로서는 난처할 게 없다. 사달라고 한 적이 없으므로 거절당한 적도 없는 것이다. 남편이 암시를 못 알아듣는 쪽이 기분도 덜 나쁘다. 갖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기분이란 게 금방 변하기도 하니까.

여자들은 암시를 즐겨 사용한다. 그들끼리도 암시를 주고받으며 눈치 게임을 벌인다. 그러니 여자들의 호의에 대해 ‘나에게 호감 있음’을 암시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여성은 남자의 반응을 떠보며 즐기는 수단으로 암시를 활용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진 결심조차 암시를 통해 전한다. 여자친구가 “우린 잘 안 맞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한다면 좋지 않은 신호다. ‘끝내자’ 내지는 ‘긴장하라’는 뜻이므로 안이하게 들었다가는 후회할 수 있다.

여자들은 이처럼 암시로 낚는다. 눈치 빠른 남자만이 낚싯바늘 사이를 유려하게 헤엄칠 수 있다. 때로는 물고 때로는 뱉으면서.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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