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90>“난 그 여자 싫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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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동년배의 다른 여성을 평하는 말 중에 빈도가 높은 것 하나.

“걔, 재수 없어.”

동창모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친구가 새 소식을 올리면 기분 상해 말한다. “또 자랑질이네.”

만나면 반가워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얘기가 헤어진 후에는 험담으로 바뀌기도 한다. ‘재수 없음’은 시공을 초월한다. 외국인 남편 만나 유럽서 살고 있는 동창의 블로그까지 찾아내 미워 죽는다.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도 기분에는 상관이 있는 것이다.

미움의 뿌리는 남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억압해둔 것을 누군가에게서 발견할 때 반감을 느낀다. 인정하기 싫은 부정적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셈이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이를 끌어내림으로써 자존감의 균형을 잡으려 할 때도 있다.

남자들은 반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태도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왜 싫은지 이유가 명확한 편이다. 상대로 인해 방해를 받거나 손해를 보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여성의 반감은 대부분 이유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가 동료의 부인과 잘 지내기를 바라지만 아내는 싫다며 발끈한다. 싫은 이유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몰라. 그 여자, 그냥 싫어.” 상대가 뚜렷하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싫은 느낌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날씬해진 여자만큼이나 미운 게 ‘비슷한 여자’다. 공통점이 많아 친구로 지내도 좋을 법한데 둔감한 주변 남자들도 느낄 만큼 둘 사이가 서늘하다. 유일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싫은 점이 상대에게서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상대가 늘 미운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먼저 연락할 때도 있다.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 만나면 혼자인 것보다는 낫다. 더 재수 없는 친구가 참석하는 모임에서는 ‘너 빼고 우린 다 친해’를 과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좋아 싫어 타령’은 그들에게 놀이와도 같다. 남자들이 카메라나 게임기, 플라모델, 오토바이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여성은 감정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다만 게임기나 카메라와는 달리 그들에게는 ‘진지한’ 놀이다. 그러니 왜냐고 따질 필요도 없겠지만 모른 척 외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귀 기울여 듣고 “그래도 당신이 더 낫다”고 확인을 해주는 정도가 적당하겠다.

‘싫다’고는 해도 대개 큰 탈 없이 관계를 이어나간다. 관계관리는 그들의 전문 분야다. 아침에는 흉보던 친구를, 저녁때는 둘도 없는 사이로 치켜세울 때도 있다. “싫다더니?” 하고 물으면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한다. “내가 언제?”

한상복 작가
#미움#시기#여자의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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