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인적쇄신을 왜 국민이 애원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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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쇄신과 소통의 요구는 부당한 외부 압력이 아니다
국정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 왜 국민이 애원하도록 만드나
2월 있을 청와대 내각 개편
기대 이상의 ‘퀀텀 점프’가 돼야 그나마 지지율 반전 계기 될 것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고집도 시간이 지나면 소신이 된다는데 소신도 시간이 지나면 고집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여론조사에 반영됐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에 대한 분명한 옐로카드다. ‘취임 이후 처음’이라는 수치가 네 개나 나왔다. 잘하고 있다는 지지율이 35%까지 떨어진 것도 처음이고,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5%나 된 것도 처음이다.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기반인 대구 경북에서 부정적 의견이 긍정적 의견을 넘어서고 50대에서 부정이 긍정을 앞지른 것도 처음이다.

기자회견은 만능이 아니다.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회견에 나서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기자회견은 시기, 내용, 이미지, 현안대응력, 기대만족도 등으로 성패가 갈린다. 대통령이 이번 기자회견에서 실패한 것은 다양한 국정 구상에도 불구하고 가장 관심을 끌었던 현안에 대해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국민은 대통령에게 정치인의 역할을 기대했으나 대통령은 검사 변호사 판사 역할에 충실했다. 참모들은 잘못이 없다고 미리부터 확신했고,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해왔다고 변호했으며, 따라서 내칠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국민 여론이나 요구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정무적 판단은 작동하지 않았다.

문고리 3인방은 잘못이 없기에 계속 쓰겠다고 했지만, 똑같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음종환 행정관의 사표를 단칼에 수리한 것을 보면 그런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십상시 중에서도 성골이 있고 육두품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이 분석한 박근혜 리더십의 변화는 흥미롭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대선 전의 장점이 최근에는 단점으로 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안정적 리더십이 폐쇄적 리더십으로, 견고한 리더십이 완고한 리더십으로, 신중한 리더십이 실기하는 리더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선 전에는 남성성의 장점(안정감, 원칙, 소신)과 여성성의 장점(부드러움, 패션감각)을 두루 갖춘 중성적 리더십의 장점이 돋보였으나 최근에는 남성성의 단점(독선, 오기)과 여성성의 단점(우유부단)이 함께 나타나면서 중성적 리더십의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비장한 자가진단과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게 최 원장의 조언이다.

대통령이 수세를 만회할 카드는 현재로선 인적쇄신과 소통밖에 없다. 인적쇄신과 소통밖에 없다고 하는 이유는 대통령 혼자서,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 회복이나 외교 안보, 북한 문제 등은 아무리 노력해도 진전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이나 언론은 그런 거시적인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성과목표를 제시한 적이 없다. 유일하게 분명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는 게 인적쇄신과 소통이다.

대통령은 참모들을 변호하며 그들은 사심이 없다고 했다. 내보내더라도 예우를 갖춰서 내보내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사심이 없는 것은 국민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예우를 받아야 할 사람도 국민이다. 대통령은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내친다면 누가 내 옆에서 일을 하겠느냐고 반문했지만, 민심이 대통령 곁을 떠나가는 것은 어쩔 것인가. 대통령은 외부의 압력에 밀려서 인적쇄신을 하는 것도 싫어한다고 한다. 국민의 요구는 부당한 압력이 아니다. 인사는 대통령이 하지만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언제까지 대통령에게 인적쇄신과 소통을 애원하도록 만들 것인가. 이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특보단은 답이 될 수 없다. 청와대의 인적 구성과 보좌 방식을 그대로 둔 채 특보단을 꾸려봤자 장식품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내달에 있을 것이라는 청와대와 내각 개편에서 대통령은 본인이 밖을 향해 주문한 ‘퀀텀 점프’를 본인이 실천해야 한다. 국민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인적쇄신으로 떠나간 민심을 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그게 소통의 제일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인적쇄신과 소통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을지도 모른다. 이는 정권의 불행 이전에 나라의 불행이다.

“다스리는 자가 어떤 사람을 어떤 직무에 임명하는 경우, 그 직무에 더 적합한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그는 신에 대해서 죄를 범하는 것이고 국가에 대해서도 죄를 범하는 것이다.”(존 스튜어트 밀)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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