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프란치스코 교황의 ‘빈곤 경제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7일 2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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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론주의 영향에 “고삐 풀린 시장경제는 독재”
부패한 바티칸은행 맡은 교황, 貧者에 은행돈 나눠주는 대신 투자전문가 모아 개혁 택했다
극심한 빈부격차 고쳐야 하되 해법은 해방신학에 없다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교황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에 패착이 될 것.”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을 지낸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기 전부터 이렇게 예견했다. 교황이 언급하는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땅이 바로 여기임을 확인하게 돼 정부로선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정부의 영리병원 허용, 금융규제 완화 같은 경제정책은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는 교황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좌파매체들은 지금 난리다. ‘고삐 풀린 시장경제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는 교황 말씀에 딱 들어맞는다는 거다.

정부도 얼떨결에 인정하는 모양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드는 정책브리핑에서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는 교황의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을 소개하며 “그간 비판해왔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더욱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맞장구친 것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법안 국회 통과는 물 건너갈 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가톨릭 신자다. 신심이 깊지는 못하지만 교황의 파격적이리만큼 청빈하고 소탈한 말과 행동은 경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대한 교황의 언급은 종교적인 의미 말고는 진리로도, 사실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바티칸의 루트비히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은 “남미 사람들의 심리를 알지 못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이 경험한 자본주의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아니라 부패 아니면 정실 자본주의뿐이다. 자본주의 비판은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지만 교황은 제3세계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경험한 정치는 마르크시즘과 자유주의 사이에서 헤맨 페론주의 포퓰리즘 아니면 군부독재였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조국에서 교황은 해방신학을 내놓고 지지하진 않았지만 가난한 이에 대한 착취를 비판하며 청빈을 실천했다. 미워하면서 닮게 된 건지 페론주의의 영향을 받아 국가 역할을 중시하고 엘리트 공격 같은 포퓰리즘 수법에 능하다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의 지적이다.

안타깝게도 페론주의를 숭상하는 아르헨티나는 페론이 남긴 포퓰리즘과 폐쇄경제 탓에 최근 여덟 번째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았다. 유럽에서 재정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는 우연찮게도 죄 가톨릭국가(그리스는 그리스정교)다.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가 살아 돌아온다면 가톨릭국가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막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 나라들은 규제 많고 정부 지출도 북유럽 뺨치는 비중이어서 ‘고삐 풀린 시장경제’라고 하기 어렵다. 차라리 직업윤리는 약하고 돈을 죄악시하면서 관료와 부패에는 관대한 가톨릭 문화가 재정위기를 키웠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자본주의를 일깨워준 신학자 마이클 노백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제론은 가난한 자를 가난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교황을 공경한대도 그의 빈곤 경제학만은 따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바로잡아야 마땅하되 중요한 것은 가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교황이 말하는, 또 좌파진영에서 강조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대만으로는 한참 모자란다. 그 정도로 세상의 격차를 없앨 수 있다면 교황은 부패로 얼룩진 바티칸은행을 해체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주고 말았을 거다.

교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티칸은행 경영진을 모조리 교체한 뒤 최고의 금융 전문가 7명을 불러 금융개혁을 전담시킨 것이다. 스페인 몬드라곤 같은 협동조합 성직자를 부르지 않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중시한다고 노조에 맡기지도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을 진짜 도우려면 그들이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로마에서 교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건 교황의 파격적 스타일 덕분에 관광객이 늘고 경제가 좋아져서라는 얘기가 있다. 교황이 준 경제적 화두는 마음과 윤리 바로잡기에 소중히 활용하되,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기로 쓰는 건 교황도 원치 않는다고 믿고 싶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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