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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18>죽음 앞에서 시험받는 효도

동아일보

입력 2012-12-18 03:00:00 수정 2012-12-19 07:21:22

최철주 칼럼니스트
30대 젊은 남자 환자가 경기 성남시 보바스기념병원 완화의료센터로 들어온다. 말기암 환자는 보통 20여 일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입원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부모는 쉽게 아들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며느리도 집요하게 남편의 연명 치료에 매달리며 중환자실을 드나든다.


자식들 체면치레 위해 병원 순례

환자가 노인이라면 분위기가 좀 달라진다. 할머니가 말기인 경우 배우자인 할아버지는 애정밀착형이 된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기 싫어 계속 치료를 서두른다. 이에 비해 자녀들은 차분한 모습이다. 엄마를 편히 보내 드리기 위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아버지를 설득한다.

이 병원의 호스피스 전문의 박진노 내과과장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의 증상이 더욱 나빠질 개연성이 높으므로 보호자가 임종을 준비하는 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족의 합의로 환자가 편안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길을 찾아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박 과장은 환자에 대한 효도가 어디까지여야 하느냐를 늘 생각한다. 자칫 ‘지나친 효도’가 환자를 힘들게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임종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 부모를 우겨 가며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 가는 자녀들도 있다. 부모에게 잘못했던 죄책감 때문에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국회의 고위직을 맡았던 유명 정치인의 가슴 아픈 참회를 기억하고 있다. 암으로 다 죽어 가는 어머니를 수술하고 또 수술하도록 의사에게 맡겼던 불효를 지금까지도 씻어 낼 수 없다는 고백이다. 자신은 그게 효도라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깨닫고 보니 불효도 그런 불효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병원에서나 인간이 소멸해 가는 과정을 우리는 지켜볼 수 있다. 가족의 반응도 다양하다. 현대 의학의 모든 수단이 동원되어도 차도가 없을 때 목격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최후의 문제가 등장한다. 가족 구성원의 생각이 모아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환자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평소에 남긴 유언마저 없다면 뒤처리가 더 어렵다. 더구나 환자가 재산과 명예를 많이 쌓은 사람이라면 자녀들 사이에 효심 경쟁이 엿보인다. 누군가 ‘우리 부모님을 이렇게 팽개칠 수는 없지 않으냐’라고 말을 꺼내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무게 있어 보이는 웃어른이 편안한 마무리를 설득해 주지 않는다면 환자는 무작정 ‘연명 치료’에 들어가기 쉽다. 이때 어떤 길이 효도이고 불효인지 마음 속 갈등이 커진다.


“최고의 모든것 해드렸다”자기만족

오래전 K 장관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아들간의 송사도 그와 같은 마찰에서 빚어진 것이다. 재산 상속을 둘러싼 효심 다툼과 겹쳐 아버지의 명예를 먹칠한 사건이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가족에겐 이상한 일이 꼬리를 문다. 엄마 아빠를 계속 중환자실에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의견 대립이 날카로울수록 진짜 효심을 읽기 어렵다.

중환자실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 엿볼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현상이 하나 있다. 그동안 환자 간병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친인척이 어느 날 나타나서 요란하게 울거나 큰 소리로 다른 보호자들을 야단치는 일이다. ‘환자를 이렇게 버려 둘 참이냐’라고 호통이라도 치게 되면 그동안 다른 가족이 쌓아 놓았던 화합과 인내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만다. 이미 결정했던 호스피스 치료마저 중단 위기에 빠진다. 사전의료의향서 등도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직면한다.

큰 목소리의 주인공이 과시하는 효심이 더 애절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불효자로 누명을 쓰게 될지도 모를 다른 가족은 항상 마지막에 나타나는 돌발변수를 경계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둘러싸고 동생이 형이나 오빠 누나와 의견을 달리한다면 대개는 손위 형제들이 난감한 처지에 몰린다. 동생들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자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덜 깨쳤기 때문일까.

인간은 누구나 깨끗한 마무리를 하고 싶어 한다. 다만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부모나 배우자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도움이 필요하다. 종양 전문의인 L 교수는 효도의 재발견을 주장한다.

“장성한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암 말기인 엄마에게 마지막까지 심각한 증상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그들을 설득해도 막무가내였어요. 환자에게도 인생을 정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세 아들이 똑같이 엄마에게 사실을 알리면 충격을 받아 돌아가시니 비밀로 해 두자고 합니다. 결국 환자는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 버렸어요. 그게 무슨 효도인가요. 불효막심한 거지. 지금 이 시대에는 죽음을 둘러싼 올바른 효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무심한 효도나 무식한 효도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있다. S대학의 P 교수에 따르면 지식층의 자녀들 사이에 부모에게 ‘최선을 다했다’라든가, ‘최고의 모든 것을 해 드렸다’라며 자기만족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말기 상태라면 이미 의학적 의료적 치료는 끝난 셈이지요. 그런데 그 단계에서도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가며 환자를 외국 병원에 모시고 오가느라 모두가 지쳐 있어요. 그런 최선의 노력은 환자를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자식의 체면치레를 위한 것일까요? 그런 부모를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는 행위는 환자를 괴롭혀서 빨리 돌아가시게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효자라면 부모 인생 마무리 도와야

환자가 불치병 진단을 받았을 경우 화목한 집안은 환자에게 시선을 맞추고 그를 중심으로 간병한다. 환자가 생각해 온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인생 마무리를 도와준다. 우리가 기억할 만한 효도 방식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다른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 초기 증상 때는 멀리 제주도 등지에서부터 비행기로 환자와 동행한다. 병이 점점 악화되면서 가족의 관심은 멀어진다. 핵가족화로 구성원의 사회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자에 대한 투자도 줄어든다. 환자가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가족은 더욱 그의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오히려 멀어지기 쉽다. 효도는 이때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불효도 시험 받는다. 효와 불효는 환자에게 보여 주는 사랑의 깊이에 따라 달리 반응한다. 죽어 가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그 깊이를 이야기할 수 없는 채 떠나 버린다. 남아 있는 우리는 이 시대의 효자인가 불효자인가? 왜 우리는 늘 죄책감을 갖는가? 떠나간 영혼이 대답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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