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낡은 프레임에 갇힌 직업觀, 미래세대 앞길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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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당시 평생직장인 줄 알았던 회사에서 조기 퇴직자들이 쏟아져 나올 때 한의과대학의 경쟁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30대 나이에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서 한의대에 간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초임이 월 200만 원도 안 되는 한의사가 속출하고 있다. 한의사는 약 2배로 늘고 수요는 줄면서 대다수 한의원이 어려움을 겪는다. 한의사가 되면 회사에서 ‘잘릴’ 걱정도 없고 돈을 많이 벌어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 것이라던 기대가 불과 10년 만에 무너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직업의 부상(浮上)과 쇠퇴가 일어나는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기술의 빠른 진보와 수명 연장으로 미래세대는 일생 동안 커리어플랜을 몇 번씩 바꾸며 살아가야 할 판이다. 직업선택에서도 당장의 수입과 인기보다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 절실하다. 기성세대는 거대한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한 취업포털이 지난해 직장인 408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자녀의 미래직업’을 조사한 결과 1위는 변호사 판사, 2위는 공무원, 3위는 의사 간호사 등이었다.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도 고소득을 보장받던 시대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매년 1000명의 사법시험 합격자가 배출되면서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자들이 연간 2000명씩 쏟아져 나오면 법률시장도 포화상태를 맞는다. 의사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폐업하는 병의원도 급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격증 하나로 평생을 보장받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자녀의 적성이나 소질과 무관하게 부모와 교사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직종에 아이들을 몰아넣는 일은 실패하기 쉽다. 국가적으로도 인적 자원의 왜곡이며 낭비다. 자녀의 머리가 좋으면 유럽 부모들은 예술을, 미국은 과학 분야를 권유한다고 한다. 우수한 두뇌들이 법률과 의료 쪽에 편중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의 성장 동력인 과학기술 분야에 기업가정신을 갖고 뛰어드는 인재가 많은 나라가 희망적이다.

직업 전문가들은 고령화와 감성, 문화적 욕구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시대 추세로 볼 때 미래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유망직업이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낡은 직업관(觀)으로부터 아이들을 풀어줘 수십 년 후에도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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