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혐한류 날조 기사 퍼나르는 中관영매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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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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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부터 18일 밤까지 중국 관영 신화통신 홈페이지에는 혐한(嫌韓) 감정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기사가 떠 있었다. 중국신문망 기사를 전재(轉載)한 것으로 표시돼 있는 이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김병덕(金秉德)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가 중국 최고의 시인이자 시선(詩仙)으로 추앙받아온 이백(李白·이태백) 등 당나라 때 이(李)씨 성을 가진 유명 시인들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김 교수는 한국문화를 표절한 데 대해 중국에 항의하고 당나라 시에 대해 유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허위 기사다. 서울대 교무처에 따르면 같은 이름의 교수가 서울대 역사계열 학과에는 물론이고 서울대 전체 교수 가운데 없다. 또 서울대는 역사학과는 없고 인문대에 국사과와 동양사과, 그리고 서양사과가, 사범대에 역사교육학과가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로 한국인 가운데 이백을 한민족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수년 전부터 중국 인터넷에는 한국인이 중국 역사나 인물을 빼앗으려 한다는 일련의 가짜기사가 종종 등장해 왔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한국 정부는 이런 기사의 근절을 여러 차례 중국 정부에 요청했고 중국 정부도 지난해 ‘쑨중산(孫中山·쑨원)이 한국인이라고 한국 언론이 보도했다’는 내용의 엉터리 기사를 실은 광둥(廣東) 성의 신콰이(新快)보에 징계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근거 없는 기사가 올해도 수차례 나올 정도로 중국 인터넷에서는 여전하다.

하지만 중국 유력 매체들은 이런 기사를 걸러내기보다 오히려 더 알리고 있다. 신화통신은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와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언론이다. 신화통신이 출처로 밝힌 중국신문망 역시 반(半)관영으로 중국인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유력한 매체다. 중국신문망에도 같은 기사가 한국인을 욕하는 내용이 대부분인 댓글 270여 개가 달린 채 게재돼 있다. 비난 댓글은 하루 전에 비해 50여 개가 늘었다.

그런데 중국신문망 기사도 자체 기사가 아니다. 서부 간쑤(甘肅) 성 간쑤일보가 14일 보도한 내용을 중국신문망이 퍼온 것이다. 엉터리 보도를 유력 매체가 검증이나 비판 없이 퍼왔고, 다른 유력 매체가 다시 퍼가면서 신뢰도를 높이는 황당한 일이 생기고 있다. 이런 허위 기사가 자주 등장하고 그로 인해 상당한 폐해가 발생해 온 사실을 중국 대표매체들이 모를 리 없다. 중국 대표매체들이 이런 기사를 퍼와 홈페이지에 싣기 전에 사실을 확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기대한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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