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포승줄 묶인 박근혜를 보고 싶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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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를 출입하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기자는 “캠프 내에서 ‘독재자 딸이 아니라 독재자’라고 한다”며 웃었다.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랬지만, 박 후보의 캠프 운영도 ‘당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독재자 딸 아니라 독재자”

한 인사의 회고. “대선 승리를 위해선 박 후보가 아버지의 유신 독재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후보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교이자 ‘금단의 영역’이었다.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저승의 아버지가 자신을 부정하고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바라겠느냐, 자신을 지키려다 패배하는 것을 원하겠느냐’는 논리로 한 시간가량 설득했다. 아무런 대답도 않고 레이저를 쏘는데, 어디 무서운 심연에서 끄집어낸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한번 맞아 보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돌이켜 보면 박 전 대통령이 반대 의견을 말하기보다 레이저 발사를 애용(?)한 것도 소통 장애의 반증이었다. ‘썰렁 유머’로 헛웃음을 유발한 것도 대화 상대와 교감에 약하다는 뜻이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뒤 아직 탄핵소추가 되기 전, 당시 박 대통령이 공식행사에 참석했다. 자칫 낭떠러지로 추락할 운명에 처한 대통령이 수행 인사의 양복 맵시에 대해 품평을 했다. 주변의 반응은 뜨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저렇게 대범한 건가, 아니면 아예 모르는 건가?’


그런 박 전 대통령이 12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관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눈이 부은 상태로 말을 잇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38년 전인 1979년 11월 21일 청와대에서 나올 때가 생각나서였을까. 당시 27세였던 박 전 대통령은 15년 11개월을 청와대에서 살았다. 이번 재임기간 4년 1개월을 합치면 20년이나 청와대에 머물렀지만, 나올 때는 두 번 다 쫓겨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에 매일 미용사가 출입하는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반대로 묻고 싶다. 평생 단정한 올림머리를 보여줬던 전직 대통령이 파면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풀어헤친 머리로 나타나길 바라는가. 보통 여성이라면 자신이 머리를 다듬을 줄 알겠지만, 다 아는 바와 같이 박 전 대통령은 다른 삶을 살았다. 그에게도 일반인의 삶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본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수 높은 안경에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구치소와 검찰청사를 오가는 모습이 TV에 나오곤 한다. 이제 박 전 대통령까지 그런 모습을 봐야 하나. 물론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대통령을 파면한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66조 1항)고 규정한다. 얼마 전까지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를 지낸 사람의 처절한 몰락을 보는 건 국격(國格) 훼손 여부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존심부터 상처 받을 것이다.

불구속 재판으로 정의 세워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절차를 중단하자는 게 아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정의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직 국가원수를 끝까지 몰아붙여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박 전 대통령은 민주 법치국가의 대통령답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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