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폴로 계획’ 성공, 그 뒤엔 흑인 女 수학자가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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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피겨스/마고 리 셰털리 지음·고정아 옮김/416쪽·동아엠앤비·1만7000원

숨겨진 천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단지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냉정한 차별과 편견에 부딪쳤던 세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담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숨겨진 천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단지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냉정한 차별과 편견에 부딪쳤던 세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담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그 여자분에게 숫자를 점검시켜 줘요. 숫자가 맞다고 하면, 출발하겠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1962년 2월. 미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기록된 ‘존 글렌’이 목숨을 건 첫 우주비행을 앞두고 찾은 건 캐서린 존슨이었다. 캐서린 존슨은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첫 유인우주선 궤도를 계산해냈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놀랍게도 ‘흑인 여성’이었다. 존 글렌은 나사의 수많은 엔지니어 중에서도 늘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정확한 결과를 내놓는 그를 신뢰했다.

거대한 성취 뒤엔 언제나 ‘가려진 사람들’(Hidden Figures)이 있게 마련이다.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리장성을 보며 그것을 쌓아올린 벽돌공을, 프랑스의 개선문을 보며 노동자들의 땀방울을 떠올렸듯 작가 마고 리 셰털리는 미국의 화려한 우주개발 역사 뒤에 가려진 흑인 여성들의 삶에 주목한다.

책은 나사와 그 전신인 항공자문위원회(NACA)에서 일했던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이란 세 흑인 여성 수학자에 대한 실화를 담은 에세이다.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긴 사립 흑인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던 도로시 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5세의 나이에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에 역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한 캐서린 존슨,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메리 잭슨의 삶을 짚어 나간다.

책의 배경인 1950, 60년대 미국은 여전히 차별이 만연했다. 노예해방이 이뤄진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버스에는 백인과 흑인 좌석이 나뉘어 있었고, 화장실조차도 따로 써야 했다. 지금 들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이지만 당시엔 일상이었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세 흑인 여성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더 높은 학위를 지녔지만 백인들로 구성된 팀과는 격리된 채 근무했다. 식당에서도 ‘유색인 컴퓨터’(당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한 유능한 수학자를 컴퓨터라 불렀다)라는 종이가 놓인 지정 좌석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힘겨운 시대였지만 이들은 차별에 굴하지 않았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책을 위해 무려 5년 동안 자료를 조사했다는 작가는 이 성공담이 비단 세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며 “1943년부터 1980년까지 랭글리 기념 항공연구소에서 컴퓨터, 수학자, 엔지니어 또는 과학자로 일한 흑인 여자의 이름을 쉰 명 가까이 댈 수 있다”고 덧붙인다.

책을 바탕으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 ‘히든피겨스’는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백악관에서 열린 특별시사회에서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럽다”며 ‘별 다섯 개’의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26일(현지 시간) 열리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도로시 본 역할을 맡은 옥타비아 스펜서가 여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작품상과 각색상에도 후보로 올랐다. 영화는 국내에서도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히든피겨스#마고 리 셰털리#아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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