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경제 성장했는데, 점점 더 사람답게 살기 힘든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굿바이 동물원(강태식·한겨레출판사·2012)

요즘 시내 곳곳에서 안내판을 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람 왕래가 많은 건널목이나 지하철역 앞에서 가게 이름과 방향 표시가 담긴 안내판을 들고 몇 시간이고 가만히 서 있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길 한쪽에 가만히 서서 광고 문구가 씌어진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늘 하나 없는 도심 한복판에서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 있는 그들은 때론 망부석을 연상하게 한다. 그들이 눈에 띌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그들의 옷 때문만이 아니다. 광고판이나 현수막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엿보이는 현실의 가혹함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 구실을 하고 싶어서 사람이기를 잠시 포기한 이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실직한 30대 가장이다. 아내가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동안 마늘 까기나 인형 눈 붙이기 등과 같은 부업을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다. 마침내 찾아낸 일자리는 동물원에서 고릴라 탈을 쓰고 고릴라 연기 하기다. 이곳의 동물들은 모두 주인공처럼 동물 탈을 쓰고 동물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의 동료 고릴라 ‘앤’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여성이다. 그녀의 꿈은 ‘번듯한 직업을 구해서 사람답게 살기’다. 이를 위해 그녀는 낮에는 동물원에서 고릴라 연기를 하고 밤엔 시험공부를 하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책에 묘사된 얘기들은 소설 속 허구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주인공과 ‘앤’들이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김포공항에서 청소 용역 노동자들이 “우리도 사람”이라고 외치며 머리를 삭발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들만이 아니다. 법에서 정한 시간당 최저임금(2017년 기준 6470원)도 받지 못하며 ‘사람다운 삶을 꿈꾸는’ 근로자가 내년에 3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소설 속 동물원은 우리 옆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사람#휴머니즘#아르바이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