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컬처]수백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애국심 잣대로만 판단해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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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국뽕 논쟁’ 들춰보니…

지난달 27일 개봉해 관객 700만 명 돌파를 눈앞에둔 영화 ‘인천상륙작전’(위 사진).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최근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 ‘연평해전’과 ‘국제시장’ ‘명량’(왼쪽부터 아래로)역시 비슷한 이유로 사회적 파문을 불렀다. CJ E&M 제공·동아일보DB
지난달 27일 개봉해 관객 700만 명 돌파를 눈앞에둔 영화 ‘인천상륙작전’(위 사진).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최근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 ‘연평해전’과 ‘국제시장’ ‘명량’(왼쪽부터 아래로)역시 비슷한 이유로 사회적 파문을 불렀다. CJ E&M 제공·동아일보DB
“올해 ‘황야의 결투’는 모두가 승자였다.”

이게 뭔가. 올림픽도 아니고 다 이겼다니. 에이전트41(김배중)은 자기가 써 놓고도 헷갈렸다. 하나 올해 여름 영화시장은 확실히 그랬다. 4대 배급사가 총출동해 500억 원(총제작비) ‘전쟁’을 벌였는데 패자가 없다. 물론 22일 기준으로 ‘부산행’(약 1125만 명)이 가장 크게 웃었지만, ‘인천상륙작전’(679만 명) ‘터널’(524만 명) ‘덕혜옹주’(490만 명)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요원 모두 ‘손에 손잡고’(서울 올림픽 주제가)라도 부르려 했으나, 찜찜한 대목은 남아 있다. 영화계 단골손님인 ‘국뽕’ 논란 때문이다. ‘나라 국(國)’과 ‘히로뽕’을 합친 말로 지나친 애국주의를 비하한단 설명도 이젠 머쓱할 정도. 영화계 일각에서는 올해 6·25전쟁이 소재인 ‘인천…’이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뽕에 기댄 졸작’이란 평과 ‘국뽕으로 폄훼된 수작’이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 뽕에 취했건 안 취했건 다들 ‘뽕 타령’이다. 불끈한 에이전트2(정양환)는 우악스럽게 41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도 뽕 따러 가자.”

○ 진짜 영화계 좀비는 국뽕 논쟁


뽕밭의 발원지는 요원도 찾기 어려웠다. 2012년 전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려졌으나 명확하진 않다. “한민족이 수메르 왕국을 세웠다” 같은 국수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조롱이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영화계에선 이 용어 등장 전부터 ‘국뽕’ 사태가 존재했다. 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본격적인 발화점이었다. 애국심 호소와 작품성 논란으로 뒤범벅된 영화는 관객 785만5474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이 들며 흥행했으나 170억 원의 적자를 봤다.

옳건 그르건, ‘디 워’가 증명한 애국의 티켓 파워는 쭉 이어졌다. 역대 흥행 1, 2위인 2014년 ‘명량’(약 1762만 명)과 ‘국제시장’(약 1426만 명)은 모두 국뽕 논란이 불거졌던 작품. 지난해 600만 명이 넘은 ‘연평해전’도 마찬가지다. 한 영화제작자는 “과거엔 이런 논란을 불편해했으나 요즘은 하나의 마케팅 기법으로 인식된다”며 “인천상륙작전이나 덕혜옹주는 기획 단계부터 이를 활용할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천…’도 수혜자일까. 한 배급사 관계자는 “‘천만 영화’를 5편이나 내놓은 CJ로선 순제작비가 147억 원이나 들어간 대작에 더 높은 기대를 했을 것”이라며 “수익은 내겠지만 ‘국뽕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개봉 전부터 워낙 욕을 먹어 현재 스코어에 가슴을 쓸어내린단 후문”이라며 “중장년층이 찾게 만드는 ‘애국심 코드’는 여전히 위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결과를 놓고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형국이다.

○ 누굴 위하여 논란을 불태우나


문제는 ‘국뽕’ 딱지가 붙는 순간 다른 요소는 논외가 된다는 점이다. 요원들이 접촉한 ‘인천…’을 보지 않은 이들은 대다수가 ‘국뽕’에 거부감이 컸다. 대학생 박준형 씨(27)는 “취업과 결혼 등 현실적 문제로 벅차 애국심 얘기만 거론해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 50대 주부는 “나라 사랑을 되새긴 교훈적 작품”이라며 “무조건 뒤떨어진 보수우익으로 모는 분위기가 싫다”고 답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디 워’ 때처럼 무 자르듯 찬반으로 갈려 생산적 토론을 벌일 기회조차 없다”고 아쉬워했다.

평단이 사람들의 취향을 살피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연예기획사 이사는 “평론가는 만듦새에 집중해 흥행 전망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며 “자기반성 없이 700만 관객의 선택을 국뽕 잣대로 판가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이 갈등만 키운단 우려도 컸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양극화되고 소속감이 붕괴된 상태에서 무조건적 애국심 강조는 간극을 더 깊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부나 사회지도층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이런 논쟁도 잦아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에이전트2는 다시 ‘인천…’을 봤다. 실은 그도 개봉 전 무지 박한 평점을 줬다. 무엇을 놓쳤기에 ‘병론가(평론가 비하)’가 됐나. 근데 대통령도 20일 영화를 관람했단다. 아, 흥행 예측은 실패했던 한 평론가 이건 또 맞히다니.

“아마 곧 대통령이 ‘인천…’을 볼 겁니다. 칭찬도 하겠죠.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죠. 이런 상상을 해봐요. 대통령이나 여당이 ‘부산행’이나 ‘터널’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세월호, 메르스가 떠올랐다. 재발 방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란 메시지를 남기는 거죠. 그럼 이런 국뽕 논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인천상륙작전#국뽕#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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