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보수우파, ‘임을 위한 행진곡’부터 許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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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도입부 가사의 비장미와 격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대학 시절 집회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5·18민주화운동 행사가 이 노래 때문에 시끄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논란의 핵심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합창(合唱)은 되고 제창(齊唱)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합창이나 제창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적어도 국가보훈처 주관 5·18 행사에서 합창은 합창단 노래를 따라 부를 수만 있다는 뜻이다. ‘애국가 제창’처럼 별도 식순으로 지정해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것은 안 된다.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정부 주관으로 첫 기념식을 연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간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됐다. 이에 반발한 5·18 단체들은 2010년부터 별도 기념식을 연다. 국가보훈처는 이 노래가 북한이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정부에서 기념곡을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제창을 반대한다.

북한 영화에 아리랑이 나온다고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할 것인가. 정부 주관 행사에서 12년간 제창했던 상징곡을 갑자기 빼앗기다시피 한 5·18 유족이나 관련자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1년에 한 번 국가 추도행사에서 제창한다고 이념에 색깔이 물드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기념곡으로 지정해 하나로 통합된 추도행사에서 애국가와 함께 제창하도록 해야 한다.

보수도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뀌어야 한다. 20대 총선 유권자는 50대(19.9%)와 60대 이상(23.4%)이 43.3%로 30대(18.1%)와 20대 이하(17.6%)를 합친 것보다 7.6%포인트 많았다. 이런 구성비에 야권 분열 구도로 새누리당 압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어땠나. 50, 60대 유권자의 양(量)이 늘었지만 질(質)이 달라진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독재 타도 데모에 나섰던 60대와 대학 시절 ‘임을…’을 목 터지게 불렀던 50대가 새누리당의 텃밭이던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에 주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여권 성향 유권자의 변화는 야권 분열 선거 구도마저 무력화시켰다. 수도권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국민의당이 야권표보다 여권표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19대 총선 수도권에서 5%포인트 미만 득표율 차로 당락이 갈린 지역구가 31곳이나 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수도권 지역구 득표에서도 15%나 가져가면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그 결과 더민주당이 압승했다면 야권이 아닌 여권 분열 구도였음이 자명하다.

자식의 취업난을 목도한 여권 성향 유권자에게 ‘금수저’와 ‘헬조선’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수가 ‘집토끼의 반란’에서 살아남으려면 ‘각개 전투에선 지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각오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국정 교과서와 사이버테러방지법, 근로시간 단축 문제 같은 전선(前線)에서 유연함을 보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구조조정 문제 등 안보와 시장경제의 핵심가치를 지키는 데 협상력을 높일 필요도 있다. 진보좌파는 김종인 안철수류(流)의 우클릭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보수우파, 좀 더 좌클릭해도 대한민국 안 무너진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임을 위한 행진곡#5·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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