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호경]“이번에는 정말 끝난 것 같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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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사회부
김호경·사회부
2013년 4월 27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는 북한의 개성공단 출입 제한 조치로 발이 묶여 있던 입주 기업인들이 26일 만에 남한 땅을 밟았다. 이들이 타고 온 차량에는 하나같이 짐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들은 마중 나온 회사 직원을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잠시. 개성에서 갖고 내려온 짐을 서둘러 트럭에 옮긴 뒤 각자의 거래처와 공장으로 향했다.

11일 약 3년 만에 취재차 다시 찾은 CIQ의 광경은 그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눈물의 상봉도, 짐을 옮겨 싣는 분주함도 볼 수 없었다. 이날 오후 5시경 북한의 추방 조치 이후 약 5시간 만에 귀환한 입주 기업인들은 개인 소지품만 겨우 갖고 나왔다. 트럭의 짐칸은 텅 비어 있었다. 이들을 마중 나온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입주 기업인들에게는 전과 달리 철수 준비는커녕 최소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0일 오후 4시경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공장을 돌리던 입주 기업인들은 24시간 뒤 창고에 수북하게 쌓인 제품을 남겨 두고 다급하게 쫓겨나야 했다. 같은 시간 남한에 있던 직원들은 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탓일까. 3년 전 철수 때는 “하루빨리 다시 올라가면 좋겠다”, “남북 정부가 원만하게 해결하길 바란다”며 희망을 말하던 기업인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11일 만난 입주 기업인들은 아무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다. 10년간 개성공단에서 일했다는 한 직원은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산전수전 다 겪어 봤지만 이번에는 정말 끝난 것 같다”고 북쪽을 바라보며 줄담배를 피웠다.

지금까지 만난 입주 기업 대표나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자식처럼 키운 곳’이라며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중에는 출경 예정일에 차량이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개성공단에 간 직원도 있었다. 휴대전화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을 북한 가요로 해 둔 이도 적지 않았다. 입주 기업인과 직원들이 개성공단 폐쇄로 겪은 상실감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만큼 커 보였다.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 교류의 상징이자 마지막 보루였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은 정치적 리스크만 빼면 해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적의 생산기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컸고 결국 다시 문이 닫혔다. 11일 밤 12시 무렵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우리 인원이 전원 철수한 직후 전기와 수도도 모두 끊겼다. 남다른 사명감으로 공단을 일군 기업인들과 남북 관계의 앞날도 불 꺼진 개성공단처럼 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건 아닌지 착잡함이 밀려 왔다.

김호경·사회부 whalefisher@donga.com
#개성공단#ciq#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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