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박근혜, 루비콘 강을 건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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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역시 고수(高手)다.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카드를 내민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든 생각이다. 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초강수는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남자’로 불리는 그밖에 던질 수 없다.

4차 북핵 실험 한 달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로켓 발사 성공이라는 핵폭탄급 연타를 맞으면서 국민들이 나눈 정서는 여느 때 같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무력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관심보다 위험한 무력감

한국과 국제사회가 ‘강력한 대북 제재’를 외칠 때마다 북한은 더 가공할 핵·미사일 능력으로 우리를 무력하게 했다. 게다가 4차는 ‘유사 수폭’ 실험이었고, ICBM에 얹을 수 있는 탄두 중량은 2배(200kg가량)로 늘었다. 얼마 안 돼 김정은이 수폭을 얹은 ICBM을 실전 배치할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다니, 결국 수폭을 가진 북을 이고 살아야 하나…. 무관심보다 훨씬 위험한 무력감이었다.

한미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협의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태클로 ‘제대로 되겠어’ 하는 의구심마저 들던 터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 최후의 카드’인 공단 가동 중단을 불사하면서 중-러는 물론 국제사회에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무엇보다 내부적으로 ‘우리도 주도적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불어넣어 무력감을 덜어낸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게임의 고수다. 아홉 살에 청와대에 들어가 스물둘에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맡아 ‘조기교육’을 받은 과목이 정치요, 권력이다. 이후 집권할 때까지 부모와 자신의 죽음까지 가까이 하며 수많은 실전을 치렀다. 한 측근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두려운 상대는 없다”고 평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커터 칼로 피습됐을 때도 침착하게 자신의 손으로 철저히 지혈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가 ‘이렇게 피를 조금 흘린 게 놀랍다’고 했을 정도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이고, 나 죽네’ 하고 난리를 치다가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정치게임의 고수인 그가 통치(統治)에 그렇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이걸 문제 삼을 때는 아니다. 위기에 적전분열(敵前分裂)하는 국가나 체제는 예외 없이 추락했다. 박 대통령은 최후의 카드를 던지며 루비콘 강을 건넜고, 어떻게든 북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실효성 있는 제재를 이끌어내는 게 국가적 당면과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1월에 루비콘 강을 건넜다. 로마 원로원이 자신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자 1개 군단을 이끌고 도강했다. 그가 강을 건너며 남긴 유명한 말.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가자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무장한 채 군대를 이끌고 본국 로마와 속주의 경계인 이 강을 건너면 명백한 반란이었지만, 이탈자는 단 1명뿐이었다.
함께 건너도록 설득해야

앞으로 남북관계는 경색할 것이고,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에 따라 전운이 감돌 수도 있다. 불안해진 국민 사이에서 ‘북한이 수폭을 가지면 어떠냐, 전쟁보단 낫지 않으냐’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그럴수록 박 대통령은 직접 선두에 서서 설득하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이 대열을 흩뜨리지 않고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널 수 있느냐에 우리의 명운이 달려 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박근혜#루비콘 강#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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