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용렬한 ‘대통령 생일蘭’ 거절, 그런 정무수석이면 경질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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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국 정치사에 기록됨 직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64회 생일을 맞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보내려던 축하 난을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3번이나 “정중히 사양하겠다”며 거절한 것이다. 김성수 더민주당 대변인이 이런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린 뒤에야 청와대 측은 부랴부랴 다시 받고 사과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현기환 정무수석이 ‘여야가 처리에 합의한 법안들조차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축하 난을 주고받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사양했다”며 “박 대통령은 이 사실을 몰랐으며 참모진 오찬 중 보고받고 현 수석을 크게 질책했다”고 해명했다.

‘생일 난 소동’은 ‘박근혜 청와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물밑으로는 대화가 오가야 하는 게 정치의 세계다. 김 대변인은 생일 난에 ‘대화와 국정 운영 협조 의지’를 담았다고 했다. 야당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생일 축하 난을 보낸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정국 경색을 풀 기회로 활용하기는커녕 거부해 버린 청와대의 용렬함이 참으로 딱하다.

청와대 설명이 사실이면 대통령은 당장 현 수석을 경질해야 한다. 정무수석은 박 대통령의 전방위 메신저다. 여권에서는 ‘현기환이 다해 먹는다’ ‘TK(대구경북) 물갈이 기획자는 현기환’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제1야당 대표의 난을 혼자 판단해 거부할 만큼 오만한 정무수석은 대통령에게 누가 될 뿐이다.

만일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는 박 대통령이 난을 거절했다가 번복한 것이라면, 혹은 현 수석이 박 대통령의 뜻을 읽고 거절했다가 뒤늦게 악역을 맡았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도왔다가 야당으로 옮긴 김 위원장이 대통령에게는 ‘진실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도 18개 법안의 처리를 야당에 촉구했다. 법안 처리를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직접 ‘소통’이라도 해야 할 야당 대표의 축하 난을 거절해서야 언제 입법 마비가 풀리겠는가.
#박근혜#난#정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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