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찬양 열올리던 黨지도원 “南 재봉설비 구할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채널A 개국 4주년 기획, 北-中 국경 ‘자본주의 바람’]
단둥 조선 한국 민속거리 가보니

단둥 北근로자들 활기



실제 주인이 한국인인 중국 단둥의 의류공장에서 북한 파견 근로자들이 재봉틀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단둥 지역에서만 600명 이상의 북한 파견 근로자가 한국인 사장에게 고용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단둥=김용균 채널A 기자 ydydrbs@channela-mt.com
단둥 北근로자들 활기 실제 주인이 한국인인 중국 단둥의 의류공장에서 북한 파견 근로자들이 재봉틀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단둥 지역에서만 600명 이상의 북한 파견 근로자가 한국인 사장에게 고용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단둥=김용균 채널A 기자 ydydrbs@channela-mt.com
지난달 16일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세관 앞 ‘조선 한국 민속거리’. 한국산 내복을 한참 동안 고르고 있는 북한 보위부 요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서 취재진에게 자신을 당 지도원이라고 소개한 북한 주민은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원수님의 덕으로 강성대국에 나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북한을 찬양하다가도 “남조선의 재봉 설비를 구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남한과 북한, 조선족 사업가들이 나란히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이곳에선 북한에 불고 있는 개방의 훈풍을 가장 먼저 엿볼 수 있었다.

○ 북한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한국 상품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 위로 ‘평북’ 번호판을 단 북한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단둥세관 안에는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북한 여성 수십 명이 신의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랴오닝 성 내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었다. 세관을 가득 메운 북한 사람 중 ‘김일성 배지’를 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취재에 동행한 탈북자 출신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과거에는 북한 사람이라면 모두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착용했고, 행동도 훨씬 조심스러웠는데 요즘엔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세관을 통과한 북한 화물차를 따라가 봤다. 20분쯤 지나 하차장에 도착한 화물차는 까맣고 하얀 가루를 담은 포대를 한가득 내려놓았다. 하차장의 중국인 근로자는 “신의주에서 생산한 철광석”이라고 설명했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최대 수출 품목은 석탄, 철광석 등 광물이다. 15억6800만 달러 상당을 수출했는데 그중 97.4%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하차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물류창고에선 북한으로 들어갈 화물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태양열 발전기’를 실은 트럭이 물류창고를 빠져나갔다. 북-중 무역상인 북한 출신 화교 정모 씨(52·여)는 “북한의 좋지 않은 전력사정 때문에 겨울철에는 난방용품이나 태양열 발전기가 인기”라고 했다.

단둥세관 앞 민속거리 상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가장 분주했다. 화물차가 출발하기 전 한국 제품을 사려는 북한의 운전사들 때문이다. 한 상점에선 점원이 한국산 분유의 상표 부분을 검은색 사인펜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중국인 점원은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 분유가 인기인데 그대로 들여가면 문제가 된다”며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상표를 가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재력가나 고위층은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 물건을 구입한다고 한다. 보따리상에게 제품 사진을 찍어 주문하는 식이다. 한 보따리상은 “최근 ○○유업의 커피믹스와 ○○화장품의 염색약을 주문받았다”고 했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제품은 전기밥솥이었지만 최근엔 인기가 식었다고 한다. 한 상인은 “한국 밥솥을 살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미 다 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몇 년만 고생하면 윤택하게 살 수 있다”

단둥에서 북한 근로자 150여 명을 고용해 의류를 생산하는 A무역상사. 서류상 사장은 조선족 황모 씨지만 실제로는 한국인 사업가 정진호(가명·58) 씨 소유의 업체다.

정 씨는 1990년대부터 중국에서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공장을 운영해 왔다. 정 씨는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직접 대북 투자를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아까워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공장을 방문해 업무 보고를 받는다. 공장 운영은 주로 조선족 사장 황 씨와 북한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북한 관리자가 공장에 상주하며 결정한다.

정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것은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한 달 임금은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 북한 당국이 이 중 60%를 가져가고 나머지가 근로자들 몫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기숙사 비용 등을 제외한 월급 대부분을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한다. 공장 주변에는 북한에서 파견된 보위부 직원이 머물고 있어 주말에도 북한 근로자들은 기숙사 밖을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중국으로 나와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2만여 명에 이른다.

조선족 사장 황 씨는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고 항상 서로 감시하며 공동생활을 해야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며 “몇 년만 고생하면 가족들이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둥=김유림 rim@donga.com·고정현 채널A 기자
#채널a#북한#중국#자본주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