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불 꺼진 ‘메리 크리스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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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의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스타벅스가 걸려들었다. 스타벅스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별 썰매 등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종이컵으로 분위기를 띄우는데 파리 테러가 발생한 올해엔 기독교 상징물을 빼고 빨간색 컵만 내놓았다. 트럼프는 “스타벅스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기로 했다”며 불매운동을 제안했다.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인의 증오심을 표와 연결시키려는 트럼프다운 선거운동이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최대 명절이지만 기독교만의 명절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가족 또는 이웃과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일부 이슬람 국가도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한다. 놀랍게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인 시리아도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무함마드(마호메트)와 같은 선지자로 인정한다.

▷테러 영향으로 서방세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파리에선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샹젤리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행사가 생략됐다. 미국 쇼핑가에선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쓰고 공공장소에서 산타나 루돌프도 사라졌다. IS가 서방국가에 대한 테러를 경고한 가운데 굳이 기독교 색채를 드러내는 인사말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자극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미국은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 의해 건립된 나라이지만 최근 들어 무신론자와 이슬람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미국 기독교도는 46.5%로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다. 인구 비례 기독교도의 수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다. 언제부터인가 모텔이 붐비는 유흥의 날로 바뀐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탄생의 의미는 여전히 소중하다. IS의 파리 테러로 성탄을 마음껏 축하하지 못하는 세태가 안타깝지만 타(他) 종교에 대한 관용이 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트럼프#스타벅스#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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