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환자 이송중 사고땐 소방관 책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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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특례법, 일반인과 동일 적용

소방차가 구급·구조 활동을 위해 출동하던 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났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안전운전을 위해 노력한 사실이 입증되면 사망사고까지도 소방관 개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지만, 한국의 소방관은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민사책임까지 져야 한다.

24일 소방관 김모 씨(33)는 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월 구급차로 환자를 이송하다 응급실 주차장에서 보행자 A 씨(91·여)를 친 혐의가 인정됐다. 이 사고로 A 씨는 중증뇌손상을 입고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당시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며 “A 씨 상태가 좋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복지 포인트를 통해 가입한 보험으로 피해자의 가족에게 4000만 원의 합의금을 건넸다. 하지만 법에 규정돼 있는 형사처벌을 피할 순 없었다.

이처럼 구급차가 교통사고를 냈을 때 일반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도로교통법은 구급차나 소방차가 긴급 출동할 때 신호 위반, 과속, 중앙선 침범을 허용하고 있지만 사고가 나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적용돼 운전한 대원에게 일반 운전자와 같은 형사책임을 지우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응급 상황으로 출동할 때 사이렌과 경고등을 켜고, 안전운전을 위해 노력한 사실이 입증되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2013년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해 긴급 출동하던 소방차가 16세 여학생을 치어 숨지게 했을 때도 수사당국은 운전한 소방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소방당국 책임자는 지역 언론을 통해 “여학생이 사망한 것은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원들의 프로다운 구조 활동 덕분에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음을 덧붙이고 싶다”며 사고를 낸 소방대원을 감쌌다. 당시 사망한 여학생 유가족 측 변호사도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로 해결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피해자 유가족은 소방대원이 아닌 샌프란시스코 시와 소방당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운전대원은 “2011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운전대원은 소방서에서 기피 보직”이라고 털어놨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빨리 이송하는 것이 운전대원의 임무이지만 그러다 발생한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구급·구조 출동 과정에서 법규 위반으로 사고가 나더라도 운전대원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내용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개정안이 2013년 발의됐지만 아직도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선진국은 구조를 위해 출동하는 차량이 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것을 감안해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민사상 책임 또한 개인이 아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한국도 소방관이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방관#교통사고특례법#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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