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차기 정부에선 국사교과서 또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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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담당 교사가 가진 국사교과서 선택권 회수해야
‘박정희 현대史’ 객관적 평가… 박근혜 정부는 적임 아니다
지학사 등 괜찮은 교과서까지 惡으로 모는 구도는 잘못

황호택 논설주간
황호택 논설주간
시장에서 자원 배분이 항상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시장의 실패는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역사교과서 시장도 대표적으로 시장 실패가 일어나고 있는 분야다. 현재 국사교과서 8종 중 비교적 균형이 잡혔거나 좌파적 시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3종 교과서의 채택률은 10% 정도다. 공정한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이러한 시장 점유율이 생겨났다면 시장 참여자 모두가 승복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시장에서 책을 사는 사람은 학생과 학부모인데 교과서 선택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교과서의 선택은 과목별 교사협의회,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교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과목 담당 교사들의 발언권이 강하다.

역사학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 역사과목 담당 교사들의 진보성향이 강한 편이다. 일본의 경우 역사교과서의 채택 권한을 지방의 교육위원회가 갖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방법을 쓰기도 어렵다. 일부 지역의 교육감들은 전교조 출신이거나 전교조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밀턴이 설파한 자기수정의 원리(self-righting principle)에 따르면 다양한 시각을 담은 역사교과서들이 공개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하면 좋은 교과서가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이것에 배치된다.

작년에 논란이 일었던 교학사 교과서는 급하게 쓰느라고 오류가 적지 않았다. 교육부의 수정 지시를 받고 오류를 수정했지만 전교조와 좌파 시민단체들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교학사 교과서의 시장 진입 자체를 봉쇄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려는 학교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압박을 가했다. 이런 완벽한 봉쇄작전으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률을 사실상 0%로 저지했다. 나는 이런 극단의 운동방식이 국정화라는 극단의 후폭풍을 불러왔다고 본다.

그래도 비교적 균형 잡힌 서술을 담았다는 기존 국사교과서의 집필 교수는 “한국사의 연구 성과를 공정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북한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다. 정부가 기존의 교과서 전체를 악(惡)으로 몰고 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교과서 집필 경험에 비춰 국사편찬위가 짧은 준비 기간에 우리보다 더 나은 교과서를 만들어 내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국론이 양분되다시피 하고 있다. 야당과 재야 일각에서는 “국사교과서를 유신시대로 회귀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퍼붓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유신을 선포했고 2년 후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역사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국사교과서에 근현대사 부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역사교육은 국민의 정체성 확립과도 관련이 깊다. 설화 같은 고대사, 아득한 중세사보다는 지금 우리 세대와 우리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가 현실적으로 더 와 닿는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취와 정통성은 교과서 밖 현실 속에서 이미 판가름 나 있다. 아무것도 꿀릴 것이 없는 우리가 근현대사를 안 가르치거나 줄여서 가르칠 이유가 없다.

한국의 현대사를 쓰다 보면 박정희라는 거목(巨木)에 관한 기술이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간단하게 서술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고 공과가 함께 있지만 그가 이 나라의 경제발전과 근대화 혁명을 이룩한 업적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박정희와 5·16과 그리고 유신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을 하려면 국정화로 가더라도 박근혜 시대는 적기(適期)가 아니다.

기존의 검인정교과서를 대체할 새 국정교과서는 이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에 나온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민주화 다양화로 가는데 한국사만 거꾸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563억 원을 들여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을 개발했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사실상 폐지된 바 있다. 국사교과서 정책도 차기 정권에서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해 보고 추진해야 한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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