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31>아내는 왜 비밀정원을 가꿨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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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의 최근작 중에 ‘비밀의 화원’이라는 단편이 있다. 작중 아내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고, 남편은 궁금증과 의구심 사이를 오가며 기회를 엿본다. 마침내 아내의 휴대전화를 손에 넣은 남편은 전문가의 힘을 빌려 비밀번호를 풀어낸다.

그는 아내의 비밀세계를 엿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휴대전화 속에는 다른 여자가 살고 있었다. 미인형 얼굴에 나이도 이름도 다른 여자가 비싼 가방을 들고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글을 올렸다. 그 밑에는 수많은 댓글과 답글이 달려 있었다. 아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에 다른 인생을 창조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내의 비밀세계를 엿보고 당황했다”는 남자를 간혹 만난다. 일테면 주말에 집에 있던 아내가 SNS에서는 삼청동 일대를 휘젓고 다녔더라는 것이다. 예쁜 가게와 음식 사진들이 증거물로 올라와 있더란다.

누구나 따분한 느낌보다는 기분 좋은 자극을 원한다. 남다른 능력과 경험을 통해 빛나는 자신을 타인의 인정 속에서 확인받고 싶다.

그런데 남성의 승부욕과 달리, 전업주부들은 상실감 때문에 SNS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되풀이하다가 문득 자기 정체성을 잃은 것 같은 공허함과 갑갑함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라는 외로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소통하려고 찾아보게 된다. 시큰둥해 입을 다문 남편 말고, 그녀를 알아줄 사람.

SNS를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글을 올리고 다른 이의 반응에 기뻐한다. ‘좋아요’ 숫자와 댓글에서 보람을 찾는다. 때로는 관심을 모으려고 거짓글을 살짝 올리기도 한다. 그런 성향이 늘면, 자기 생각과 행동의 주인 자리를 SNS에 빼앗기게 된다.

일상이 단조롭게만 느껴지고 보람까지 찾지 못한다면 마음속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럴 때일수록 곁에서 귀를 기울여주는 친구가 절실하다. 그런 친구를 한 명이라도 가진 이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SNS의 가상세계에 흠뻑 빠져들 이유가 없다.

믿고 의지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현실의 시간은, 비록 짧아도 활기차게 보냈다는 느낌을 만들어준다. 그 느낌은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고 있다는 성취감’으로 이어진다.

사실 아내는 그 사람이 남편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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