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 폭력성의 근원, 700만년 전 조상 침팬지서 찾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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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어디서 왔나/아먀기와 주이치 지음/한승동 옮김/340쪽·1만5000원·곰출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초반부 장면. 인류의 조상이 뼈를 무기로 삼아 동료와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화면 갈무리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초반부 장면. 인류의 조상이 뼈를 무기로 삼아 동료와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화면 갈무리
저자는 일본 명문 교토대 총장으로 영장류사회생태학과 인류진화론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전후 세대인 그가 인간의 폭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프리카에서 유인원을 조사하면서 목격한 수많은 분쟁이었다.

그는 1994년 르완다에서 기나긴 피란민 행렬을 지켜봤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싸움으로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희생된 뒤였다. 1996년과 1998년에는 자이르 내전의 참상을 목격했다. 저자는 유인원의 생태와 행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 폭력성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현대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에 진화의 역사가 관련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지구상에는 300여 종의 영장류가 있다. 이 중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등을 유인원으로 분류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 해독 결과에 따르면 둘 사이의 유전자 차이는 1.2%에 불과하다. 고릴라나 오랑우탄과도 2∼3% 차이에 불과하다.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적 차이는 유인원과 다른 영장류 간의 차이보다도 작다.

기존에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수렵 능력이 발전하면서 싸움을 즐기고 과격해졌다는 학설이 우세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 말한다. 인간만의 독특한 폭력습성을 알기 위해서는 진화 과정을 보다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약 700만 년 전에 ‘침팬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서부 아프리카 열대우림지역에서 살던 초기 인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숲을 떠나 초원지대로 이주했다. 초원은 몸을 숨길 나무가 없어 표범이나 사자 같은 맹수의 위협에 취약하다. 아기가 맹수에게 희생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인류는 출산 간격이 짧아지고 유인원보다 많은 아이를 낳게 됐다. 또 아기 보호를 특정한 남성에게 맡기기 위해 엄마는 그 남성과 지속적인 배우자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가족이 탄생했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친상간을 막아야 했다. 성 교섭 상대를 둘러싼 자식들이나 혈족들의 파국적 경쟁을 막기 위해서는 이런 금기가 필수였다. 금기를 지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성적 억압과 불만을 초기 인류는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해소했다. 그런데 음식을 나누는 방식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음식을 획득한 남성이 이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 것이다.

저자는 약 1만 년 전 시작된 농경과 인류 폭력성의 관계도 짚고 있다. 수렵 채집을 할 때는 각각의 공동체가 넓은 영토를 공유하면서 살았다. 열대우림에 사는 피그미족과 부시먼도 수백 km²에 이르는 활동영역을 갖고 있다. 각 공동체가 독점할 수 있는 영토가 아니다. 하지만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경작물을 보호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언어의 출현과 땅의 소유 때문에 대량 살육이 벌어졌다고 진단한다. 언어가 생겨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국가나 민족 같은 가상의 공동체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게 됐다. 이런 가상의 공동체가 마음에 깃들면서 인간이 싸운다는 것이다. 야생 침팬지도 집단 간에 싸움을 한다. 하지만 침팬지는 각 개체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싸우는 반면에 인간은 무리에 봉사하기 위해 싸운다는 점에서 침팬지와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폭력을 불러온 인류의 특성 속에서 폭력을 해소할 단초를 찾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는 유일하게 어미 이외의 존재가 아이를 가르치는 존재다. 즉 공동육아가 가능한 존재라는 것. 이는 인간이 타자에 대한 관대함을 높이고, 안면이 없는 동료들이 있는 집단에 금방 동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세계화로 경계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이런 속성을 잘 살린다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폭력은 어디서 왔나#영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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