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건 40분만의 병원행, 그의 생명을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뇌경색 골든타임 응급대응 성공… 장애 안 남긴 윤강섭 원장 사례

윤강섭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이 의료진이 짠 스케줄에 따라 병원에서 다리 근력을 늘리는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뇌중풍 환자의 재활치료는 뇌 기능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제공
윤강섭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이 의료진이 짠 스케줄에 따라 병원에서 다리 근력을 늘리는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뇌중풍 환자의 재활치료는 뇌 기능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제공
“제 사례가 많은 뇌중풍(뇌졸중) 환자들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됐으면 합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윤강섭 서울시보라매병원장(59)은 처음에는 인터뷰를 꺼렸다. 윤 원장은 인공관절 시술과 고관절 치료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지만 의사로서 건강관리를 못해 뇌중풍을 겪은 것과 자신의 질병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린 것. 하지만 본인의 사례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인터뷰에 응했다.

윤강섭 서울시보라매병원장
윤강섭 서울시보라매병원장
윤 원장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 2월 6일 저녁. 지인들과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그는 “갑자기 뒤통수에서 다이너마이트 심지가 타는 것 같은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지러운 느낌이 들더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몸상태가 악화됐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윤 원장은 간신히 택시를 타고 40분 거리인 보라매병원으로 향했다. 택시에서는 구토가 계속됐고, 응급실에 도착한 후에는 점점 의식이 흐려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윤 원장에게는 뇌졸중의 일종인 뇌경색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의 주치의인 이용석 보라매병원 뇌졸중센터장은 “원장님은 뇌혈관 일부가 혈전에 막힌 뇌경색이었는데, 뇌경색 중에서도 상태가 매우 안 좋은 경우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의료진은 즉시 혈전 억제제를 투약하고, 막힌 혈관 쪽으로 혈류를 증가시키는 치료를 했다. 하지만 뇌가 붓는 뇌수종 증세가 나타나 수술이 필요했다. 뇌가 부어 뇌척수액의 흐름을 막아 뇌압이 올랐다. 뒤쪽 두개골과 뇌막을 열어 뇌압을 낮추는 수술을 했다. 뇌경색 환자가 수술까지 이르는 경우는 5∼10%로 흔하지 않다. 이 센터장은 “병원장을 수술해야 하는 의료진의 부담이 매우 컸다”고 했다.

치료와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윤 원장은 수술 3개월 만에 일상 업무에 복귀해 수술과 진료를 할 정도로 후유증이 거의 없이 회복됐다. 뇌중풍은 몸 한쪽이 마비되는 등의 후유증이 흔하다.

의료진은 윤 원장이 후유증 없이 회복한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응급대응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증세를 느끼고 곧장 병원으로 향해 전문가의 치료를 받은 점이다. 3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해 치료받은 뇌중풍 환자의 3개월 뒤 일상생활 복귀율은 6∼12시간에 치료받은 환자에 비해 26%, 12시간 지난 환자에 비해서는 45%나 높다. 이 센터장은 “몸을 가눌 수 없이 어지럽고 토하는 증세를 보이는 뇌경색 환자는 편한 자세로 옆으로 눕히고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우황청심환 등을 먹이면 기도를 막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절한 수술 시기도 후유증을 줄였다. 병원에 도착한 윤 원장의 증세가 점점 안 좋아졌는데, 집중관찰을 통해 적절한 수술 시점을 잡았다는 것이다. 또 환자가 재활치료에 적극 임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윤 원장은 수술 직후 손이 부자연스럽고 걷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균형 잡기와 걷기, 업무에 복귀하도록 손을 단련하는 작업치료, 근력운동 등의 단계적 재활치료를 거쳤다. 이 센터장은 “재활치료의 목적은 뇌를 자극해 손상된 뇌세포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꾸준한 재활치료가 장기적인 경과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건강을 회복한 윤 원장은 “제2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짜고 맵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고, 잠자는 시간도 불규칙하고 술 담배도 즐겼지만 이제 건강식을 챙기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 그는 “평소 일벌레였는데,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며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 뇌중풍 골든타임은 3시간… 청심환 먹이지말고 빨리 병원으로 ▼


뇌중풍(뇌졸중)의 ‘골든타임’은 3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해 조치를 취해야 생명을 구하고 후유 장애를 피할 수 있다.

뇌중풍은 크게 뇌혈관이 혈전 등으로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나뉜다. 대한뇌졸중학회에 따르면 뇌중풍의 증세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다. △한쪽 팔다리 마비 나 감각 이상 △언어장애 △어지럼증 또는 비틀거리는 걸음 △눈이 안 보이거나 둘로 보임 △깨워도 깨어나지 못하는 정도의 의식장애 △심한 두통 등이다.

이런 증상이 평균 1시간 이내에 사라지면 미니 뇌중풍으로 부르는데, 뇌중풍의 전조 증상이다. 이런 전조 증상을 겪은 뒤 하루 이틀 내에 심각한 뇌중풍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뇌중풍이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아무것도 먹이면 안 된다. 기도를 막아 호흡곤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증세가 시작되면 1분, 1초가 환자의 생명과 후유증의 유무와 직결된다. 빨리 병원에 도착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뇌경색이라면 혈전 용해제를 투여해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한다. 뇌출혈이라면 뇌 안에 고인 피를 수술로 제거한다. 이용석 서울시보라매병원 뇌졸중센터장은 “생활습관만 개선해도 뇌중풍은 75% 이상 막을 수 있다”며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하루 30분 이상 운동을 하면 뇌중풍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윤강섭#서울시보라매병원#뇌졸중#뇌경색#청심환#골든타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