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늘은 살아남았다” 안도하는 내가 罪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캐롤라인 무어헤드 지음/한우리 옮김/536쪽·1만8000원·현실문화
◇인류/로베르 앙텔므 지음/고재정 옮김/466쪽·1만9500원·그린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책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에는 수용소에 끌려온 여성들이 벌거벗겨진 채 머리를 빡빡 깎이고 죄수번호를 강제로 문신으로 새기는 참혹한 순간들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동아일보DB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책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에는 수용소에 끌려온 여성들이 벌거벗겨진 채 머리를 빡빡 깎이고 죄수번호를 강제로 문신으로 새기는 참혹한 순간들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동아일보DB
올 1월 세계 각지에선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하며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수용소에 갇힌 포로 13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희생됐다. 세계는 수용소 해방의 날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데이(대학살 추모일)’로 정하고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70년이 지난 오늘도 인류애를 망각한 테러, 대량학살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70주년을 맞아 국내에도 나치 수용소를 소재로 한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영국의 기록문학 작가 캐롤라인 무어헤드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프랑스 여성의 구술과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르포르타주 ‘아우슈비츠의 여자들’과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식인 로베르 앙텔므(1917∼1990)가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풀어낸 증언문학 ‘인류’다. 각각 현지에서 2011년, 1947년 출간돼 크게 주목받았다.

여성 수감자 자네트 레르미니에가 수용소에서 그린 스케치. 한국어판에선 스케치에 색을 입혀 표지로 썼다. ⓒ Jeanette L'Herminier
여성 수감자 자네트 레르미니에가 수용소에서 그린 스케치. 한국어판에선 스케치에 색을 입혀 표지로 썼다. ⓒ Jeanette L'Herminier
‘아우슈비츠의…’는 1943년 1월 프랑스 각지에서 체포돼 가축 수송열차 ‘31000번’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여성 230명의 이야기다. 저자가 만난 생존자 중 세실 차루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세실은 나치 독일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중요 조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하고 여덟 살 딸까지 어머니에게 맡기고 활동에 투신했다. 딸 생각을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제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세실은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된 산 자와 벌거벗긴 채 쌓인 죽은 자가 있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마주한다. 그는 시신 운송 작업에 투입됐을 때 목숨이 붙어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산 자는 그의 발목을 잡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 이를 본 독일군은 그의 눈앞에서 곤봉으로 여자의 머리를 으깬다. 그는 시체를 태우는 굴뚝 연기를 보며 살았다는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생지옥 같은 29개월의 수용소 생활이 끝나고 230명 중 49명이 프랑스로 살아 돌아왔다.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 비교적 많은 여성이 목숨을 건졌다. 가학적인 학대 속에서도 여성 간의 우정과 연대는 꽃을 피웠다. 세실은 “우리는 누구를 좋아하고 또 누구를 좋아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행동하지는 않았다”며 “그것은 우정이라기보다는 연대감이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홀로 있게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훗날 ‘31000번’ 생존자들은 수용소 생활을 증언할 때 꼭 주어를 ‘나’ 대신 ‘우리’라고 말했다.

앙텔므의 ‘인류’에선 수용소 생존자만이 깨칠 수 있는 인류, 인류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려준다. 그도 1943년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가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우리는 인류는 단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최악의 희생자로서 우리가, 박해자의 힘이 가장 악질적으로 행사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 힘은 인간의 힘들 중 하나인 살해의 힘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해자는 인간을 죽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인류의 사전적 의미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뜻한다. 단, ‘인류는 하나다’란 전제조건이 성립될 때 사전적 의미도 빛을 볼 것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인류#아우슈비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