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에게 배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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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희망 되살린 3大 리더십





‘소신 있고 솔직하게,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지도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식언이나 허언으로 끝나는 지도자도 있다. 27년 만에 한국 축구를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이끈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사진)도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켰다. 한 가지 더, 그의 말은 치밀하게 계산돼 있었다. 취임부터 호주와의 결승전까지 그가 했던 ‘그라운드 밖 언어 전술’을 돌아봤다.

7년 만의 축구대표팀 외국인 사령탑인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 8일 기자들과 처음 만나 자신이 그릴 축구를 보여줬다. ‘이기는 축구’ ‘수비 잘하는 축구’가 그것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5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승리했다.

선수 선발 과정부터 그의 소신은 확고했다. 과거의 부진했던 모습이나 언론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선수들의 현재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지난해 11월 박주영을 선발한 뒤 “대표팀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과거에 비난받았다고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난 여론을 일축했다. 그러나 박주영이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자 11월까지 대기명단에도 포함돼 있지 않던 이정협을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넣었다. 차두리를 전격 합류시키면서는 “브라질 월드컵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경험이 부족해서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 수 있는 베테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솔직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했다. 대표팀 1기 명단을 발표하면서 그는 “난 외국인이고 아직 한국 축구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오기 전 대표팀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점점 강한 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과의 첫 만남에서 “한국 축구를 알려면 문화도 알아야 한다. 향후 몇 개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떤 한국 문화가 있는지 보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서 힘겹게 이긴 뒤에는 “오늘을 계기로 우리는 우승후보에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졸전을 인정하는 동시에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는 계산된 화법이었다.

이전 외국인 사령탑과 달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다. “희망이 없다면 감독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해 “K리그 선수들이 대표팀에 많이 뽑힐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내가 남기고 싶은 족적”이라는 희망도 밝혔다.

이번 대표팀은 이름값에서 역대 가장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5개월 만에 27년 동안 한국 축구가 못했던 일을 해냈다. 결승전을 마친 그는 종이에 적은 한국어를 또박또박 읽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슈틸리케 감독도 한국 축구에 자랑스러운 감독으로 남을 수 있을까. 출발은 좋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슈틸리케#축구#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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