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마뇽+네안데르탈人 5만년전 두개골의 증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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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류 특성 혼재… ‘하이브리드人’ 탄생 가능성 보여줘

2008년 이스라엘 북서부 갈릴리 지역에서 3만 년간 어둠과 침묵에 싸여 있던 대형 동굴이 발견됐다. 인근 마을에서 나온 하수구 보수공사를 하던 불도저가 동굴 윗부분을 건드리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마노’ 동굴이다. 동굴은 깊고 넓었다. 깊이가 20m, 폭이 50m, 길이는 100m에 이르렀다. 탐사단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동굴 한쪽에서 발견된 두개골. 턱과 얼굴 부분이 유실되긴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사람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5년. 두개골을 분석해 온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고고학자들은 ‘5만5000년 전에 살았던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것’이라고 네이처지 최신호에 밝혔다. 진짜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현생 인류들의 조상인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특징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부분은 현생 인류의 사촌 격이라 할 수 있는 원시 인류 네안데르탈인(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 고고학계는 “서로 종이 달라 짝짓기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발견”이라며 흥분했다.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이 왜, 어떻게 멸종했는지 밝히는 것은 고고학계의 오랜 숙제였다.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가설부터 더 좋은 옷과 무기를 만들 수 있었던 크로마뇽인과 그러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손재주 차이가 둘의 운명을 갈랐다는 가설까지 있었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둘 다 구석기인이긴 하지만 인종적 차이가 컸다. 현생 인류보다 키는 작지만 더 큰 뇌와 다부진 체구를 지녔던 네안데르탈인은 17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온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으로 35만 년 전 유럽에 도착했다.

반면 현생 인류의 직접적 조상으로 호리호리한 체구의 크로마뇽인은 그보다 한참 뒤인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4만 년 전 유럽에 정착했다. 이후 두 인류는 1만 년 넘게 공생과 경쟁 관계에 있다가 네안데르탈인은 도태하고 크로마뇽인만 살아남아 현생 인류로 진화했다. 두 집단이 지역에 따라 짧게는 25세대에서 길게는 250세대에 이르는 시간을 공존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떻든 이 공생 과정에서 두 집단 간에 짝짓기가 과연 이뤄졌는지에 대한 논란이 치열했다. 이와 관련해 미토콘드리아의 DNA 염기서열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한때 우세했지만 최근엔 현생 인류에게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발굴 조사로 두 종 간에 짝짓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번 발굴로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이 최초의 사랑을 나눈 밀회 장소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단 하나의 유골만으로 일반화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 2020년까지 예정된 동굴탐사에서 또 다른 유골이 발굴될지도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유럽 화석보다 더 오래된 크로마뇽인 화석이 서남아시아 레반트 지역에서 발견됨으로써 크로마뇽인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게 된 점에 더 주목했다.

과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짝짓기는 가능했을까. 뭐니 뭐니 해도 가장한 확실한 답은 향후 이뤄질 두개골 DNA 분석 결과에 달렸다. 발굴단을 이끈 이스라엘 헤르슈코비츠 박사도 “오직 DNA 결과만이 의문을 풀어줄 것”이라고 답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크로마뇽인#네안데르탈인#두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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