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北 최고존엄 광기뒤엔 ‘장성택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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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문제로 고위급대화 틀어지고… 소니 해킹에 대미관계 악화
간부들 장성택꼴 안나려 충성경쟁… 전례없는 ‘김정은 존엄 사수’ 광풍

최근 석 달간 북한은 ‘최고 존엄 사수’라는 틀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포박하고 있다.

10월 초 북한은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3인방의 파격적인 인천 방문으로 모처럼 고립의 탈출구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고 존엄’ 김정은을 모독하는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문을 걸어 잠갔다.

북한 인권 유린 책임자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권고가 담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북한은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20일 “한반도 비핵화 무효, 6자회담 거부, 9·19 공동성명 무효”를 발표했다. 최근엔 김정은 암살 소재 영화 상영을 막으려다 해킹 주범으로 지목돼 뜻하지 않게 테러지원국 재지정 위기에 몰렸다. 이와 동시에 체제 생존에 필요한 남한과의 관계 개선도, 미국과의 대화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해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숙청 바람이 수그러들지 않는 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한국 정보당국은 최근 몇 달 새 노동당 고위간부 수십 명이 김정은 지시에 대한 태만 등을 이유로 평양 근교 강건군관학교에서 다른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들은 “이런 분위기에선 ‘최고 존엄이 모욕당할 때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우리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누구나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은 고모부인 장성택조차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는 것이 처형 이유가 되는 현실에서 김정은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숙청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전국이 최고 존엄 사수에 매달리고 있다. 대외담당 기관들의 경쟁적인 충성 과시용 성명과 대외 협박이 이어지고 주민은 충성결의 대회와 기강 단속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생전에도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북한의 생존전략도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북한의 과민 반응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김정은은 더욱 궁지로 몰릴 수 있다.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은 이번에 자신들이 가장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아파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며 “영화 ‘인터뷰’ 상영 취소 뒤 김정은을 패러디한 비디오 게임이 나온 것처럼 앞으로 외부의 조롱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이 최고 존엄 사수를 부르짖으며 극단으로 대응한다면 세계를 상대로 무한전쟁을 벌이게 되고 경제특구 활성화와 관광을 통한 외화 획득 등 김정은식 개혁도 물 건너간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3년을 맞은 북한의 민심 동요도 변수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3년을 기다려 보았지만 김정은 시대도 기대할 게 없다,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런 때에 김정은에게 목숨 걸고 직언할 수 있는 간부가 보이지 않는 점도 김정은 체제의 치명적 결점”이라고 분석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최고존엄#장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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