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론’ 몸낮춘 새정치聯… 야권 세력재편 기류에 촉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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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탄식 이어지는 새정치민주연합
2년전 총선 연대… 통진당 원내 진출 빌미줘
“이참에 종북고리 끊고 개혁세력 결집” 목소리

법정 소란 제지당하는 민변 변호사 19일 오전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가운데)가 법정에서 “헌법이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살해했다”며 소란을 피우다 법정
 경위에게 제지당해 쫓겨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법정 소란 제지당하는 민변 변호사 19일 오전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가운데)가 법정에서 “헌법이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살해했다”며 소란을 피우다 법정 경위에게 제지당해 쫓겨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8 대 1이라….”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직후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회의는 난감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적어도 중도나 진보 성향 인사 3명은 해산에 반대할 줄 알았던 예상이 어긋난 것이다. 이 때문에 “헌재 결정에 유감이라도 먼저 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일부 비상대책위원의 의견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공식 입장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30여 분간 논의한 끝에 “헌재의 오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며 신중하게 반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당내에는 “이석기 전 의원의 행태와 생각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까지 해산하는 것은 심하지 않으냐”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헌재의 결정에 당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면 ‘종북 숙주’ 논란에 다시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수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헌재의 오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당의 자유가 훼손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재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정당의 자유가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적 가치의 최후의 보루는 헌법재판소”라며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는 정당의 자유를 포함한 결사·사상의 자유인데, 앞으로의 상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당권 도전이 유력한 문재인 의원은 “국가권력이 직접 개입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라고 비판했다.

○ 종북 숙주 원죄론 다시 불거지나

새정치연합은 통진당 해산 결정을 계기로 새정치연합이 통진당의 원내 진출에 일조했다는 ‘원죄론’이 다시 불거질까 우려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통진당과 선거연대를 하면서 통진당이 의석과 힘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해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관련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종북 논란’을 떨쳐내지 못했다.

또 헌재의 결정이 나기 직전 당 지도부는 통진당 해산에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종북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10일 비대위 회의에서 “정당 해산 결정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전례가 없다”고 했고, 문 의원도 “정당해산 심판 청구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라고 거들었다. 정동영 상임고문 등은 17일 이른바 진보진영 인사들로 구성된 ‘원탁회의’에 참석해 “통진당의 해산은 헌재 결정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선택돼야 한다. 통진당 해산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러니 우리 당이 종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조경태 의원은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도부급 인사들의 희한한 발언으로 당이 종북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인상을 보여 왔다”며 우려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우리 당이 진보적 지식인 사회나 재야로부터 ‘정부의 공안몰이, 민주주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의 10일 발언도 ‘재야 원로’ 대접을 받는 함세웅 신부 등이 당 지도부를 방문한 다음 날 나온 것이었다.

○ “선거공학적 연대 없어야”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통진당과의 선거연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수도권 재선인 정성호 의원은 “공통된 가치와 이념을 토대로 한 정책연대가 아니라 다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선거연대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공학적인 야권연대는 더이상 설 땅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 일각에서는 통진당 해산이 장기적으로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향후 각종 선거에서 통진당과 새정치연합을 연결시켜 종북 프레임에 걸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우상호 의원은 “통진당이 계속 존재했다면 우리 당이 통진당과 손잡을 것이냐로 공격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저 과거에 통진당과 왜 연대했느냐 하는 논란만 남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오히려 이번 헌재의 결정이 야권 재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간 새정치연합과 정의당, 통진당으로 분열됐던 ‘진보진영’이 하나로 결집할 계기가 생겼다는 것. 중도파 의원들은 “넓은 중도를 껴안을 수 있는 정책과 노선을 선보여야 승산이 있다”며 “이참에 통진당과 가까운 것처럼 보였던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원죄론#통합진보당#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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