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여배우의 씁쓸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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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나이 들어 내리막길을 걷는 여배우 마리아로 나오는 쥘리에트 비노슈.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나이 들어 내리막길을 걷는 여배우 마리아로 나오는 쥘리에트 비노슈.
여배우 마리아(쥘리에트 비노슈)는 세계적인 스타다. 그는 데뷔작인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40세 여자 상사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모는 스무 살 시그리드를 연기해 주목받았다. 20여 년이 지나 마리아는 같은 연극의 리메이크 버전에서 시그리드가 아닌 헬레나 역으로 무대에 오를 것을 제안 받는다.

18일 개봉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여배우의 내리막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때 하이틴 스타였던 여배우가 중년이 돼 또 다른 하이틴 스타의 어머니나 시어머니 역으로 나올 때의 심정을 그렸다고 보면 된다.

마리아는 20년간 스스로 시그리드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배우다. 그는 “20년 후 시그리드가 헬레나가 된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연출자의 설득에 못 이겨 출연하기로 하지만 대본연습을 하는 내내 헬레나가 돼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그리드로 남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헬레나의 역할과 작품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비서(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사건건 충돌하고, 새로 시그리드 역을 맡은 할리우드의 신예 조앤(클로이 머레츠)을 질투한다.

흥미로운 건 모호한 경계다. 영화에서 마리아가 비서와 대본 연습을 하는 장면은 마리아와 비서의 실제 관계를 투영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자유분방한 조앤은 20년 전 마리아를 빼닮았다. 캐스팅도 모호함을 강조하는 데 한몫했다. 영화는 비노슈가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허구의 인물인 마리아에 비노슈를 겹쳐 보게 된다. 게다가 비서 역의 스튜어트는 조앤처럼 할리우드의 유명한 스캔들 메이커다.

마리아는 결국 헬레나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영화는 그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연극의 막이 오르기 직전 리허설에서 조앤은 헬레나에 대해 “이미 볼 장 다 본 불쌍한 여자”라고 하고, 마리아는 새까맣게 어린 후배의 말을 묵묵히 들을 뿐이다.

스위스 실스마리아를 지나는 구름(Clouds of Sils Maria)을 지역 사람들은 말로야 스네이크라고 부른다. 뱀처럼 늘어진 형태로 실스마리아를 통과한다는 이 구름폭풍은 주로 나쁜 날씨를 예고하지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씁쓸하나 아름다운 여배우의 내리막길과 닮은 듯하다. 15세 이상.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여배우#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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