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형 불황 세계로 확산… 비빌 언덕 사라진 ‘수출 코리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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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10년불황 비상벨 소리]<中> 글로벌 경제도 한겨울
돈 풀기로 버티는 선진국들… 성장동력 못찾고 침체 가속
‘세계의 공장’ 中도 둔화 뚜렷… 强달러-低유가 이중 쇼크에
신흥국-중동산유국 휘청

산업용 첨단 레이더장비를 수출하는 A사는 최근 실적 악화로 시름에 빠져있다. 주요 수출대상국인 중국과 러시아 경기가 좋지 않아 수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2012년 2400만 달러(약 259억 원)였던 실적이 올해는 800만 달러로 3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엔화 약세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일본기업에 치이는 데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가 ‘10년 불황’의 위기에 처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져들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일본의 엔저 공세, 3차 위기에 빠진 유럽 경제, 최대 수출대상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 유가 하락에 따른 신흥국의 몰락 등 한국을 둘러싼 대외 경제여건이 녹록지 않다.

○ 세계 경제 동반 위축

현재 세계 경제는 새로운 성장기반을 찾기보다는 선진국이 돈을 풀어 수요를 부추기는 양적완화로 버티는 ‘긴급수혈’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한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제 회복이 더딘 흐름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률 전망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경제전망에서 2015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7월(4.0%)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신흥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5.2%에서 5.0%로 하향 조정했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릴 만큼 장기간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를 통한 돈 풀기를 계속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엔화 약세는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저가 계속되면 세계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을 벌이는 한국의 자동차, 석유제품, 기계, 철강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은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재정 긴축, 높은 실업률 등으로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는 0.3%로 10월의 0.4%보다 더 떨어지는 등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고 있다. 유로존의 경제 엔진인 독일은 성장을 멈췄고 프랑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도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중국은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서 경제를 떠받쳐왔지만 2011년 이후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5%로 잡았지만, 향후 수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대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과 중동 산유국은 유가 하락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주식, 채권, 외환 시장이 한꺼번에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6일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6.5%포인트나 올리는 ‘극약 처방’을 내놓았지만 위기탈출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수출 대상국이 중동이나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돼 있어 신흥국의 불황은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가 일본 된다’는 책을 낸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은 “세계 경제가 성장과 팽창의 시대에서 저성장 저물가 저투자 저금리의 ‘전환형 복합불황’ 시대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일본형 장기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탈출구 없는 한국 경제

세계 경제 회복이 더뎌지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수출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과거 한국 경제는 외부의 경제충격을 비교적 순조롭게 극복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에는 원화가치를 대폭 떨어뜨려 수출 증가를 통해서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원-엔 환율이 900원 선 아래로 떨어졌던 2005∼2007년에는 중국의 고성장에 힘입어 수출물량을 늘리면서 가격경쟁력 저하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로 먹고살던 한국경제의 운용전략이 벽에 부닥친 것이다.

당장 엔저 여파와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위축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수출 빅4’ 지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중국 일본 EU에 대한 수출이 감소했다. 특히 대일본 수출이 ―24.2%나 급감했다. 중국 수출도 감소세(―3.2%)로 돌아섰고, 대EU 수출은 9월 이후 석 달 연속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환율과 수출로 돌파구를 열던 과거 방식과 달리 서비스업 활성화 등 경제구조의 체질을 바꾸고 내수를 살리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재정·금융정책을 통한 대응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투자·소비 활성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박민우 기자
#불황#수출 코리아#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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