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세대 백화점 찾는 진짜 이유… 옷사러 간다? 먹으러 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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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트렌드]멋에서 맛으로… 유통업계의 권력이동

12일 오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빵집 ‘이성당’에서 사람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성당은 서울에 매장을 낸
 지 6개월도 안 돼 월평균 5억3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2일 오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빵집 ‘이성당’에서 사람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성당은 서울에 매장을 낸 지 6개월도 안 돼 월평균 5억3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게 뭐야?”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빵 집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주부 박영선 씨(45)는 깜짝 놀랐다. 30∼40명 뒤에 줄서서 기다리다가 단팥빵을 손에 얻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가까이 됐다. 단팥빵 하나 먹기까지 몇십 분을 버틴 것은 박 씨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인 김장수 씨(42)는 “몇 번 왔다가 사람들이 많아 못 먹었는데 오늘은 아예 빵 나오는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 샀다”고 말했다.

이곳은 전북 군산의 지역 빵집인 ‘이성당’이다. 올해 5월 롯데백화점 지하에 입점했다. 팥 앙금이 잘 씹히는 단팥빵과 소위 ‘사라다 빵’이라 불리는 추억의 야채빵이 이 가게의 대표 상품. 이성당은 서울에 올라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월평균 약 5억3000만 원의 매출을 내며 전국 롯데백화점 모든 식음료 매장 중 매출 1위가 됐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해외 패션이나 다른 분야를 포함해도 매출 순위 10위 안에 든다”고 말했다.

맛#1… 멋에서 맛에 권력 내준 유통업체들

김현주 이성당 사장(52·여)은 “제품이 특별하거나 엄청나게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에 먹었던 기억’이 주는 익숙함 때문에 손님들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처음에는 본점의 맛을 그대로 옮겨올 수 있을지, 서울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등 입점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성당 소속의 제빵사 50명이 서울과 군산을 오가며 제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맛의 통일성을 유지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롯데월드몰 인근에 음료와 생과자를 파는 카페 형태의 매장을 추가로 열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는 일본의 생크림 롤케이크 전문 브랜드 ‘몽슈슈’에 손님들이 줄을 선다. 현대백화점 본점에 있는 매장은 월평균 4억 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은 월평균 5억∼6억 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 두 매장 모두 각 백화점에서 매출 규모로는 식품 매장 중 1위다.

그동안 백화점과 대형복합쇼핑몰 등 유통매장의 핵심은 ‘패션’이었다. 신상품이 나오는 날에는 유명 브랜드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고 유통업체들도 새로 들여온 의류나 잡화 위주로 마케팅을 했다. 식당가는 쇼핑을 다 한 후 시간이 남으면 찾는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출 견인차 역할을 하는 콘텐츠가 ‘멋’이 아닌 ‘맛’으로 바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1년 15.2%이던 패션 부문의 매출 신장률은 2012년 5.1%, 지난해는 0.9%로 급감했다. 반면 식품 부문은 2011년 7.1%에서 지난해 12.4%로 늘었다. 매출 비중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신세계백화점 패션 매출 비중은 2009년 44.8%에서 올해 10월 말 39.7%로 준 반면 같은 기간 식품 매출 비중은 13.5%에서 올해 10월 말 14.7%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의 경우 식품 매출 비중이 2009년 35%에서 올해 10월 말 현재 약 40%로 올랐다.

이렇다 보니 대형복합쇼핑몰은 장사가 안 되는 패션 및 잡화 매장을 식품 매장으로 잇달아 바꾸고 있다. 패션 위주였던 쇼핑몰의 정체성을 바꾸는 과정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현대아이파크몰에 따르면 5년 전 58.7%(64개 매장)이던 식품 매장 비중이 올해 10월 말 현재 76.4%(81개)로 크게 늘었다. 패션 관련 매장 비중은 38.5%(42개)에서 23.6%(25개)로 줄었다. 권순구 현대아이파크몰 식음파트장은 “7월 대기업 계열의 한식 뷔페식당이 들어선 이후 인근 남성복 매출도 20% 이상 늘었다”며 “맛집의 고객 모집 효과 때문에 다른 업종에서도 덩달아 이득을 본다”고 말했다.

백화점 식품관은 고급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식품관에 레스토랑 개념을 결합시킨 게 대표적이다. 레스토랑과 식재료 매장을 결합시킨 형태로 식사를 하면서 해당 음식에 들어간 재료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롯데월드몰에 이탈리아 브랜드 ‘펙(PECK)’을 들여왔고 현대백화점은 이탈리아 브랜드 ‘이틀리’의 경기 판교점 입점을 추진 중이다. 최형모 롯데백화점 책임상품담당자는 “식품 매장도 패션 매장처럼 소비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맛#2… 밥보다 더 인기 많은 후식

전문가들은 맛집 인기의 이유를 우리 사회의 변화에서 찾는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패션이나 전자제품 등을 사면서 만족감을 얻던 사람들이 이제는 남들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먹는 것 하나도 잘 먹어야 한다’는 경향은 1990년대 X세대 문화 및 ‘자신을 위한 소비’ 경험이 있는 지금의 3040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대중적인 맛을 넘어 좀 더 특별하고 희소가치가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조용한 동네 맛집이 ‘온라인 입소문’을 타고 동네 명소가 되거나 유명 백화점 내 목 좋은 곳에 입점하기도 한다. 최근 신세계백화점은 본점 식품관을 새로 열면서 스타벅스 매장이 있던 자리에 성북동 떡집으로 알려진 ‘동병상련’을 들여왔다. 매장을 운영하는 궁중음식 무형문화재인 박경미 선생은 “명동이나 남대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수제 한과나 떡 등 전통음식을 소개하고 싶다는 백화점 측 얘기를 듣고 뜻이 맞아 입점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동네 커피숍과 빵집을 한데 모아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타임스퀘어 제공
최근 동네 커피숍과 빵집을 한데 모아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타임스퀘어 제공
특히 최근에는 한 끼 식사 못지않게 후식(디저트)이 인기를 얻으며 유통업체들의 ‘입점 1순위’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타임스퀘어는 지난달 ‘한남동 수제 베이커리’로 알려진 ‘오월의 종’과 채널A의 프로그램 ‘먹거리X파일’에 소개 됐던 연남동 ‘커피 리브레’를 쇼핑몰 내에 들여왔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동네 브랜드들이지만 타임스퀘어 측은 약 363m²(약 110평)의 넓은 공간에 두 매장을 함께 넣는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이밥차요리연구소의 노애리 수석연구원은 “소비자들은 디저트 자체를 하나의 종합 문화로 여기고 케이크 위의 장식이나 식기 등 메뉴를 구성하는 주변 요소들까지 보고 느끼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의 명물로 알려진 ‘가렛팝콘샵’의 지난달 한국 진출 선언 현장. 가렛팝콘샵 제공
미국 시카고의 명물로 알려진 ‘가렛팝콘샵’의 지난달 한국 진출 선언 현장. 가렛팝콘샵 제공
소비자들은 온라인 블로그, 해외여행 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디저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이는 해외 업체들이 한국 진출을 서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한국 법인을 만들어 국내 디저트 시장에 진출한 미국 팝콘 브랜드 ‘가렛팝콘샵’이 대표 사례다. 최근 내한한 랜스 초디 가렛팝콘샵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제품을 이미 알고 있는 한국인들로부터 한국에 매장을 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고 그것이 한국 진출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맛#3… 규모는 커지고 ‘콘텐츠’는 희귀해지고

‘오피스 상권’도 백화점이나 대형복합쇼핑몰의 식당가처럼 변하고 있다. 특히 광화문(서울파이낸스센터몰), 서울시청(오버더디시), 종로(그랑서울, 더케이트윈타워몰) 등 서울의 중심가에는 최근 들어 음식을 주제로 한 특색 있는 쇼핑몰이 잇달아 들어섰다. 식당가에 입점한 매장들 중에는 유명한 브랜드도 있지만 최근 2, 3년 안에 들어선 식당가는 상당수가 생소한 동네 맛집들로 채워졌다. 식당 ‘덩치’는 커지면서 그 안에 들어가는 소위 ‘콘텐츠’는 희소한 것이 요즘 식당가의 특징이다.

종로구 종로1가에 내년 초 문을 여는 ‘광화문 D타워’에도 지상 1층부터 5층까지 맛집 40여 곳이 입점한 대규모 음식 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 코리아’의 김성순 이사는 “과거만 해도 설렁탕 가게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까지 30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맛집이 이름을 알리는 데 석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며 “상가 측도 손님을 모으기 위해 주목받는 맛집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업체들도 수백 평 규모의 ‘외식 종합관’을 세우고 ‘규모의 경제학’을 펼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최근 대기업들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한식 뷔페에서 나타나고 있다. CJ푸드빌의 ‘계절 밥상’이나 신세계푸드의 ‘올반’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수백 평 규모의 매장에서 1만∼2만 원대 가격으로 여러 가지 한식 요리를 내놓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달 피자, 샤부샤부, 한식 등 자사 브랜드를 한데 묶은 ‘이랜드 뷔페형 외식 복합 공간’의 문을 서울 홍익대 앞에 열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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