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안지키면 오빠들 안나와요” 확 달라진 콘서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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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공연장 참사]판교 참사 학습효과… 주말 전국 공연장서 “안전우선”

5000여명 관객 ‘질서정연’ 경기 성남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2014 희망나눔 천사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모인 관객 5000여 명은 인기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등장에도 안전펜스 뒤편에 앉아 차분하게 공연을 관람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000여명 관객 ‘질서정연’ 경기 성남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2014 희망나눔 천사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모인 관객 5000여 명은 인기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등장에도 안전펜스 뒤편에 앉아 차분하게 공연을 관람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블락비(Block B)도 여러분 사고 나는 거 원하지 않아요. 가만히 앉아 있어요.”

18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4 희망나눔 천사콘서트’ 현장. 사회자로 나선 개그맨 이홍렬 씨는 거듭해서 ‘안전 주의’를 당부했다. 이날 공연에는 “새벽부터 자리를 잡았다”는 열성팬을 포함해 총 5000여 명의 관객이 구름처럼 모였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에게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7인조 남성 아이돌 ‘블락비’의 10대 소녀팬이 많았다. 이들이 자칫 무대로 근접할 경우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는 등의 사고가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

27명의 사상자(사망 16명, 부상 11명)가 발생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이후 열린 주말 대형 행사, 공연장 안전 상황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본보 취재팀이 18, 19일 주요 공연 현장의 안전 실태를 점검해 본 결과 행사 진행자가 수시로 관객에게 ‘안전’을 강조하고, 관객들도 비교적 통제에 순응하는 등 판교 사고의 ‘학습효과’가 커 보였다.

18일 서울광장의 희망나눔 천사콘서트에선 무대 10m 앞에 ‘안전펜스가 장성(長城)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소녀팬들의 무대 접근이 안전펜스 때문에 완전히 차단된 것. 주최 측은 “안전 인력만 총 150명(자원봉사자 80명, 경호업체 및 주최 측 인력 70여 명)을 동원할 정도로 펜스 안전에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조용한 콘서트장 분위기는 오후 8시 50분 소녀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블락비가 등장하고도 계속됐다. 이들은 이례적으로 다소곳이 앉은 상태에서 공연을 지켜봤다.

이날 오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컴백 콘서트’에서도 관객 입·퇴장, 스타의 등·퇴장 때 특별히 관객이 몰리거나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다. 김민석 서태지컴퍼니 대표는 “경호 관련 인력을 300여 명 배치했다”고 밝혔다.

19일 오후 약 2만 명의 관객이 몰려든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14’ 행사장(서울 올림픽공원)에서도 이적, 존박 등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끝나고 이들 팬이 나갈 때마다 “안전을 위해 천천히 퇴장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상구마다 안전 요원들이 서서 관객이 나가는 길을 일일이 안내할 정도였다. 이날 오후 경남 창원시 창원종합운동장에서 EXO-K, B.A.P, 아이유, 씨스타, 에이핑크 등 인기가수가 총출동한 가운데 2만5000여 관중이 운집한 ‘K-POP월드페스티벌 창원’ 역시 별다른 사고 없이 종료됐다. 백승엽 경남지방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400명 이상의 경찰을 행사장 곳곳에 배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질서를 유지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콘서트, 집회 등 대형 야외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관람객 규모 예측 △동선 파악 △무대 등 가설물 안전 진단 등을 꼽았다. 갈원모 을지대 보건안전환경학전공 교수는 “대형 공연 때에는 미리 위험 시나리오를 짜놓고 리허설을 반복하는 게 사고를 막는 데 유용하다”며 “특히 진행자가 공연 도중에도 안전 문제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교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매뉴얼 만능주의’에 대해선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민세홍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사고 때마다 매뉴얼 부재를 탓하는데 이건 ‘사후약방문’식 처방일 뿐이다”라며 “현재 마련된 매뉴얼이라도 최대한 간소화해서 행사 관계자들이 모두 숙지하는 게 최선의 처방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집회와 대형 행사가 잦은 서울 종로구를 담당하는 세종로 안전119센터의 한 소방관 역시 “보신각 타종행사 같은 곳을 가보면 아무리 ‘위험하다’고 말려도 통제가 전혀 안 될 때가 많다”며 “매뉴얼 타령하며 탁상공론을 하는 것보다는 환풍구처럼 위험한 곳은 알아서 피하는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임희윤/창원=강정훈 기자
#판교 공연장 참사#공연장 안전#블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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