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치적에 흠될라’ 쉬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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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제1中 50명 버스추락 사망

워터파크에 수족관까지 북한 노동신문이 5월 3일 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 리모델링 완공 소식을 전하며 공개한 야영소 전경. 건물 외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외곽에 워터슬라이드(가운데 점선 안)와 상어가 있는 실내수족관(둥근 건물), 실내체육관(위쪽 왼편) 등이 새롭게 
들어섰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워터파크에 수족관까지 북한 노동신문이 5월 3일 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 리모델링 완공 소식을 전하며 공개한 야영소 전경. 건물 외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외곽에 워터슬라이드(가운데 점선 안)와 상어가 있는 실내수족관(둥근 건물), 실내체육관(위쪽 왼편) 등이 새롭게 들어섰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북한 당국이 강원도 원산의 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로 향하던 평양제1중학교 학생 50여 명의 참사를 철저히 숨기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시설이 김정은의 치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남한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수차례 비난한 사실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 야영소, 올해 김정은 최대 치적

지난해 마식령 스키장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던 김정은은 올해는 그 관심을 송도원 야영소로 돌렸다. 김정은은 공사가 한창이던 올 2월과 준공을 앞두었던 4월, 준공일인 5월 2일, 사고 발생 이후인 7월 5일 직접 현장을 찾았다.

야영소에 대한 김정은의 각별한 관심은 그가 태어났고 어린 시절 어머니 고영희와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진 7성급 김정일 특각(호화별장)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각과 야영소는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수십 m 떨어져 있다. 이 특각에는 길이 60m의 대형 요트를 비롯해 여러 척의 호화 요트와 수십 대의 수상제트스키, 고급 워터슬라이드가 갖춰져 있다. 김정은과 원산의 특별한 관계는 미국 프로농구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지난해 9월 방북 당시 김정은이 원산 인근 휴양소에서 제트스키와 수영을 즐기고 있다고 밝히면서 알려지기도 했다.

50년 넘게 운영되던 야영소는 올 5월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물놀이 시설과 대형 수족관 등을 갖추고 재개장했다. 이는 “앞으로 마식령에서 스키도 탈 수 있게 겨울에도 야영소를 운영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야영소 재개장을 김정은의 치적으로 선전했을 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비난하는 데도 활용했다. 재개장 직후 북한 당국은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을 동원해 남한을 ‘지옥’이라고 비난했다. 5월 13일 노동신문은 ‘어디가 락원이고 어디가 지옥인가’라는 글에서 “최근 준공한 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가 북한 아이들의 궁전인데 어찌해 내 조국의 절반 땅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생죽음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참사를 당한 학생들이 다니던 평양제1중은 6년제로 3학년까지는 평양 출신 학생들에게 입학을 허용하고 4학년부터는 전국에서 뛰어난 수재를 뽑아 정원을 늘린다. 졸업생은 김일성대나 김책공대와 같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어 자녀를 진학시키기 위한 특권층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에 자식을 잃은 학부모들은 국가적으로 함구령이 떨어진 사안에 항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 사고 이후 야영소 전용 역 생겨

꼬불꼬불 마식령 고갯길 위성에서 찍은 평양∼원산고속도로의 마식령 우회로. 깊은 계곡을 옆에 끼고 가파른 길이 굽이굽이 이어진 장면이 보인다. 이 도로는 마식령 동쪽 사면의 일부 구간으로 원산시와 이어져 있다. 사진 출처 구글어스
꼬불꼬불 마식령 고갯길 위성에서 찍은 평양∼원산고속도로의 마식령 우회로. 깊은 계곡을 옆에 끼고 가파른 길이 굽이굽이 이어진 장면이 보인다. 이 도로는 마식령 동쪽 사면의 일부 구간으로 원산시와 이어져 있다. 사진 출처 구글어스
참사 한 달 반 뒤인 이달 5일 김정은은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야영소를 다시 찾았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송도원 역사(驛舍)를 둘러보고 “우리가 야영생들을 위한 직통 열차를 마련하고 운행 준비까지 다 해놓았는데 역사를 야영생들의 편리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개성이 살게 잘 꾸려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버스 추락사고 이후 김정은이 야영객을 철도로 이동시키라고 지시했고 야영소 전용 역이 급히 세워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철도 운송은 전력난과 부품난으로 기차가 수시로 다니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고로 악명 높은 마식령 우회로 구간을 피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이번에 참사를 당한 학생들이 지나간 평양∼원산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고속도로다. 1978년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길이 172km로 경제적 목적보다는 유사시 동서 병력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험준한 구간인 마식령을 관통하는 터널 3개가 계속 붕괴돼 차량들은 강원 법동군과 원산시 사이에 있는 해발 768m의 험준한 마식령을 넘는다. 김정은도 원산에 갈 때는 위험한 우회로를 피해 경비행기와 헬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송도원 야영소는 매년 사회주의 국가 청소년을 초청해 7월에 2, 3주 일정으로 국제캠프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캠프 참가자의 대다수였던 중국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면서 최근 북한은 참가자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은 야영소 리모델링을 계기로 세계 각국에서 청소년 야영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사고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면 해외 관광객 모집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북한이 평양과 야영소를 잇는 교통편을 열차로 급히 바꾸고 사고 소식을 극비에 부치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고영희#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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