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도피 추정 계곡에 수상한 텐트… 성경책-옷-식기 갖춰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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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취재진, 경로 3곳 추적해보니

경찰이 24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오솔길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피하다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안경을 발견했으나 확인 결과 인근 농장 주인의 안경으로 밝혀졌다. 유 전 회장의 안경이 맞다면 도피로 추적이 가능했으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3, 24일 유 전 회장이 별장에서 나와 도피로로 이용할 수 있는 경로 세 군데를 직접 따라가 봤다. 도주 추정 경로에선 수상한 텐트와 구원파 계열사 물통, 단종된 보해골드 소주병 등이 발견됐다. 별장에서 매실밭까지는 직선거리로 2.5km가량 떨어져 있지만 도주로에 따라 험준한 산길을 7km 넘게 걸어야 하는 경로도 있었다.

○ 도피로에 숨겨진 ‘수상한 텐트’

유 전 회장이 5월 26일 새벽 전남 순천시 ‘숲속의 추억’ 별장을 나서면서 택할 수 있는 도주 경로는 세 군데다. 정문으로 나가 50m 정도 걸으면 국도 17호선과 바로 연결되지만 사방이 뚫려 있어 금세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유 전 회장이 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는 별장 뒷문 쪽 양 갈래 오솔길이다. 왼쪽엔 얕은 계곡으로 통하는 길이, 오른쪽엔 1.1km 길이의 폐철도 터널이 나온다.

왼쪽 길을 택하면 나오는 계곡을 250m가량 거슬러 올라가니 왼쪽에 수상한 연두색 텐트가 설치돼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충분히 잘 수 있는 크기였고 텐트 입구는 철사로 잠겨 있었다. 내부엔 장판이 깔려 있었고 성경책, 100사이즈 갈색 체크무늬 남방과 검은색 트레이닝복, 식기도구와 마른 과일 등이 들어 있었다. 유 전 회장이 이 길을 택해 도피했다면 잠시 쉬어가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텐트 바로 옆에 있는 배수로를 따라가니 왼쪽에 국도 17호선 하행선 송치터널 앞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지나려면 1m 높이의 배수로를 기어올라야 하는데 밑에는 이미 누군가가 이용한 듯 디딤돌이 놓여 있었다.

별장 뒷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하천을 따라가니 왼편에 과거 철도로 썼던 폐터널 입구가 보였다. 7월 대낮인데도 내부엔 강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유 전 회장이 5월 말 도피 전 겨울 점퍼를 챙겨 입은 게 이곳을 지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 안에선 유 전 회장의 계열사 온나라유통에서 만든 350mL짜리 빈 생수병이 발견됐다. 터널 끝으로 나와 보니 유 전 회장이 사망 당시 갖고 있던 것과 같은 ‘보해골드’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등장하는 산속 도로를 따라 쭉 올라가니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순천교회로 불리는 야망연수원을 지나 국도 17호선 하행선 송치터널 앞으로 연결됐다.

○ 매실밭 뒤는 기독교 공동묘지

취재팀이 유 전 회장이 사망한 채 발견된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과 통하는 길을 역추적해 보니 유 전 회장이 매실밭 뒤쪽 산길을 통해 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매실밭 앞쪽 길은 마을과 통하는 길이라 언제든 주민의 눈에 띌 수 있다.

매실밭 뒤쪽 산길로 가니 기독교 신자 공동묘지가 나왔다. 드넓은 공동묘지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곳곳에 빈 술병이 발에 차였다. 유 전 회장이 갖고 있던 소주병 2개와 막걸리병 1개는 이곳에서 주웠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매실밭 뒤쪽 산길은 유 전 회장이 사망한 매실밭으로 연결된다. 걸어서 도피했다면 몸을 숨길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지만 산세가 매우 험해 20대인 기자도 걷기 쉽지 않았다.

한편 2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유류품인 소주병과 막걸리병 등에서도 타액이 채취됐다”며 현장 검사가 진행되고 있고 25일 국과수 결과 발표 때 함께 밝히겠다고 말했다.

순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세월호 참사#유병언 사망#유병언 도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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