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현실과 차가운 고민[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모하비 사막에서 불어오는 덥고 건조한 바람이 남캘리포니아에 불어 닥치던 어느 날 출장이 잡혀 있어 비행기를 탔다. 옆에 앉은 여행객은 “아, 정말 지구온난화가 문제긴 문제네요. 큰일이에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면 그냥 미소나 한 번 짓고 고개나 한 번 끄떡하는 게 대인접촉의 일반적인 양상인데, 그날따라 탑승 전에 너무 더워 시원하게 마신 맥주 한 잔의 흥에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 이틀 날씨가 덥다고 지구온난화는 아니고요, 긴 시간 평균적으로 날씨의 변화를 살펴봐야 기후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요.” 이 여행객은 더위에 지쳤는지 짜증스럽게 “아니, 지구온난화 같은 과학적 사실을 거부하시는 건가요?”라고 쏘아붙였다. 동시에 ‘과학적 소양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도 한동안 받아야만 했다. 곧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었지만 조심스러운 ‘사실의 해석’은 그다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함을 깨닫게 해준 해프닝이었다.

그렇다면 왜 주류 과학자들, 특히 복잡한 환경에 관계된 문제를 다루는 학자들은 사실의 해석에 조심스러워야 할까? 앞서 언급한 사례의 반대 일화를 들면 조금 더 사실이 분명해진다. 지구온난화의 과학적 증거들을 거부하는 대표 미국 정치인인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 연방 상원의원(오클라호마)은 2015년 2월 26일 상원 전체회의장에 눈 뭉치를 들고 나타나 사람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며 “2014년이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게 무언지 보이시나요? 눈 뭉치입니다. 의사당 밖에 있는 눈으로 만든 겁니다. 지금 밖은 평년에 비해 매우 춥습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현실 진단을 위한 사실의 확인을 단편적으로 하게 되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자료만 추려내어 그럴듯한 ‘소설’을 써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만큼 사실의 해석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차갑게 접근하고 확인한 사실들을 쌓아왔으며 현재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지구온난화의 증거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것이 자연적인 변화가 아닌 사람에 의한, 특히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기체의 증가에 의한 것임에 의심이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의 활동이 지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 정립됐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웨덴의 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는 1896년 전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가 되면 지구의 평균온도가 섭씨로 약 5도가 오를 것이라고 계산했다.

하지만 이 결과를 그는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날씨가 더워지면 식량 증산으로 인해 인류의 복지가 증진될 것이라고 말이다. 북유럽의 추운 날씨도 그의 해석에 한몫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의 교란에 대중적 주의를 환기시킨 사람은 레이철 카슨이다. 그녀는 1962년 ‘침묵의 봄’을 출판한다. 카슨은 당시 광범위하게 쓰였던 농약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의 환경 피해 문제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케네디 대통령까지도 기자회견에서 이 책을 언급할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농약을 만들던 듀폰을 비롯한 화학회사들은 “농약 사용을 규제하면 우리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를 뒤로하고 다시 기아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로 퇴보될 것이다”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카슨은 CBS와의 인터뷰를 통해 “누구도 우리가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복잡한 자연 균형의 한 축을 깨뜨리고 전체 자연 환경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중력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피력한 사람 중 한 명이 된다.

사회, 경제, 문화적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연 시스템의 교란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 시스템의 교란의 산물인 환경오염의 피해는 우리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구조에 대한 진단을 요구하는 경고로 볼 수 있다. 문제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 없이 자극적인 해결책 남발을 자제하고 차가운 과학적 접근법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점점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실 해설이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현실의 위협은 과학적 접근법보다 훨씬 차갑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모하비 사막#지구온난화#환경오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