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르남 의구쓰 애론” 무슨 뜻?…‘뇌안탈 어 번역기’에 ○○ 입력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7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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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르남 의구쓰 애론.”

당최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고? 9월 ‘파트3’ 방영을 앞둔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애청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던 표현이다. 확인해보니, 극에서 “푸른 피를 지녔고 사람보다 빠르면서 힘이 센” 뇌안탈 부족이 쓰는 언어라고 한다. 그럼 위 문구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누리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뇌안탈 어(語) 번역기’에 ‘마늘과 쑥의 노래’를 입력하면 이렇게 나온다. 올해 종영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소설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가 떠올랐다면 당신의 드라마 감정 지수는 평균 이상. 애청자들은 왕좌의 게임 ‘도스라키(Dothraki)’ 말과 비견하는, ‘아스달…’에 등장한 한국 드라마 최초의 가상언어를 집중 분석해봤다.

●단어의 재배열로 생소함 극대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뇌안탈 어 번역기가 뱉어낸 저 문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뇌안탈 어는 한글 자모를 거꾸로 재배치해서 단어를 만드는 ‘애너그램’ 방식을 차용했다. 이를테면, 나무(ㄴ+ㅏ+ㅁ+ㅜ)는 뇌안탈 어로 ‘우만(ㅜ+ㅁ+ㅏ+ㄴ)’, 사람(ㅅ+ㅏ+ㄹ+ㅏ+ㅁ)은 ‘마랏(ㅁ+ㅏ+ㄹ+ㅏ+ㅅ)’이 된다.

극본을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2011년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후 8년 여 동안 태고 시대의 신비한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전작이 한글 창제를 다룬 작품이었던 데다, 원래부터 훈민정음의 글자 배열에 관심이 많았던 터. 이들의 성향이 언어를 창조하는 데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물론 단순히 한글을 뒤집기만 한 건 아니다. 몇몇 단어는 영어 단어를 한글로 쓴 뒤 재배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라마에도 등장한 ‘마늘’이다. 영어 ‘garlic’을 한글 ‘갈릭(ㄱ+ㅏ+ㄹ+ㄹ+ㅣ+ㄱ)’으로 설정한 뒤 뇌안탈 어 ‘길락(ㄱ+ㅣ+ㄹ+ㄹ+ㅏ+ㄱ)’을 만들었다. 때문에 ‘사랑’은 ‘아랏(ㅇ+ㅏ+ㄹ+ㅏ+ㅅ)’도 ‘으벌(러브)’도 될 수 있다. 앞서 나온 ‘마늘과 쑥의 노래’ 답은 “길락 구쓰 애론”이 맞다.

뇌안탈 어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벌써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조사’가 없다. 굳이 따지면 ‘길락 구쓰 애론’은 ‘마늘 쑥 노래’라고 봐야 한다. 김원석 PD는 서면자료를 통해 “조사 없이 단어를 배열하는 방식이지만 시제와 인칭, 격식도 표현할 수 있다”며 뇌안탈 어가 나름의 문법체계를 갖춘 언어임을 강조했다.

드라마 속 언어 창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지만, 해외에서는 벌써부터 이런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아바타’(2009년)의 나비 족 언어나 드라마 ‘스타트렉’의 클링곤 어 등은 작품 흥행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다. ‘왕좌의 게임’의 ‘도스라키’나 ‘발리리아(Valyria)’ 어는 언어학자 데이비드 피터슨이 기본 문법 구조와 단어 3000여 개를 갖춘 언어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발음은 호전적 부족 특성 살려

‘아스달 연대기’는 뇌안탈 어의 발음에도 공을 들였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자문을 맡은 건 이미 유명한 일화. 이 교수는 “이 언어는 독일어나 일부 아프리카 언어들과 발음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면, 양쪽 성대 사이의 좁은 틈을 막았다 터뜨리면서 내는 성문파열음(聲門破裂音)이 빈번하게 쓰였다. 그런데 목젖을 긁어 어두의 강세가 세고 쉰 소리가 많아 ㅁ, ㄴ, ㅇ, ㄹ 등 울림소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최고난이도의 발음.” 때문에 이 교수 연구실과 드라마제작사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발음 연습시간엔 ‘어흐’ ‘에흐’ 등 요상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뇌안탈 어는 전문가인 이 교수조차 발음이 쉽지 않았다. 그 역시 대본을 읽으며 여러 번 NG(?)를 낸 뒤 배우가 참고할 ‘정답 녹음파일’을 제공했다. 솔직히 이 교수는 “한국인 발음에 맞게 순화하는 게 낫다”며 우려했다고. 하지만 김 PD는 “네안데르탈인을 모티브로 삼은만큼 이국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태어난 배우 유태오나 4개 국어에 능통한 가수 닉쿤을 섭외한 배경도 이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뇌안탈 어 발음을 자연스레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처사였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한 문장마다 뇌안탈 어와 발음, 뜻 등 세 줄로 만들어진 대본을 밤낮없이 달달 외워야 했다. 특히 유태오는 이 교수가 “음성학 강의를 들었으면 A를 받았겠다”며 극찬했다. 그는 “소리와 의미의 연관성이 적어 암기가 어려웠지만 독일어가 입에 배어 그나마 수월했다. 뇌안탈 어의 거친 감수성을 이해하는 게 뭣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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