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도, 이불 빨래도, 자동차도 나는 안 산다…구독해서 즐긴다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5월 25일 1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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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경제는 확산 중 - ‘구독 경제’, 일상 깊숙이 침투하다
‘제품’에서 ‘서비스’로 비즈니스 모델 전환…고객 만족과 비용 감당이 成敗 갈라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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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에 호기심 넘치지만 회사 일에 치여 에너지는 부족한 ‘나구찬’ 대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얼리어댑터이자 트렌드세터로 통한다. 저녁 회식 때 그의 모습을 엿보자.

동료들과 찾은 유명 수제맥주 펍에서 혼자 공짜로 ‘웰컴 드링크’를 받아 시원하게 들이켜는 나 대리에게 오 사원이 묻는다. “아니, 대리님 지난주까지만 해도 투싼 타고 출근하시더니, 어제는 신형 쏘나타 끌고 나오셨더라고요? 혹시 집안에서 현대차 대리점 하세요?” 나 대리는 씩 웃으며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었다. 짙푸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한 그루 나무를 그린 그림이 거실 한켠에 걸려 있었다.

“이 그림 어때? 지난 주말에 집에 새로 들였는데, 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

오 사원이 감상평을 내놓으려는 순간, 나 대리의 카카오톡이 ‘띵동’ 하고 울렸다. 거베라와 장미, 피토스포럼 등으로 구성된 작고 싱그러운 꽃다발이 지방 한 도시에서 근무하는 아내의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사진. ‘여보, 이번 주도 선물 고마워♡ 아 참, 오늘 밤에 수건 모아서 밖에 내놓는 거 잊지 마~’

“수건을 왜 집 밖에 내놔?” 워킹맘 윤 과장이 묻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호텔식 수건을 배송 받고 있거든요. 다 쓴 걸 내놓으면 업체가 수거해 가서 세탁해줘요.” 입이 떡 벌어진 윤 과장에게 나 대리가 말한다. “아 참, 저 내일 오후에 반차 씁니다. 두피 관리 예약을 해놔가지고….” 동기 김 대리가 핀잔을 준다. “무슨 남자가 매주 미용실에 가? 그건 그렇고, 저번 야유회 때 가져온 전통주는 어디서 구했어? 도수가 꽤 센 것 같은데 숙취는 없더라고.”

스타트업도, 대기업도 ‘도전’

이러한 나구찬 대리의 일상은 ‘실현가능한’ 허구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구독 서비스가 방송, 영화, 전자책 등 디지털 콘텐츠 밖으로 외연을 넓혀 일상생활 속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대리가 소비하는 맥주, 자동차, 그림, 꽃, 수건, 미용실, 전통주는 현재 국내(주로 서울)에서 구독 가능한 것들이다(표 참조).

나 대리가 아직 이용하지 않은 구독 서비스도 한둘이 아니다. 와인, 과일과 채소, 가정간편식, 샐러드, 면도날, 양말, 침구세트, 마스크팩, 수제맥주, 커피원두, 의류, 취미용 소품도 구독할 수 있다. 교통수단도 구독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는 추세다. 우버, 리프트는 미국 일부 도시에서 수요가 많을 때 일시적으로 요금이 올라가는 ‘서지 프라이싱(Surge Pricing)’을 적용받지 않으면서 이용 요금을 할인받는 유료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다. 국내 차량공유업체 쏘카도 최근 우버의 서비스와 비슷한 ‘쏘카패스’를 회원 1만 명 모집으로 한정 출시했다. 월정액을 내면 쏘카 전 차량을 차종이나 횟수 제한 없이 5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최근 공유 전동킥보드 ‘씽씽’을 내놓은 펌프도 향후 월정액을 내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오픈갤러리’는 3개월마다 원화를 교체해주는 그림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왼쪽). 월정액제 미용실 ‘월간헤어’의 김정수 대표원장이 미용실 ‘구독자’에게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오픈갤러리  ⓒ시원상]
‘오픈갤러리’는 3개월마다 원화를 교체해주는 그림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왼쪽). 월정액제 미용실 ‘월간헤어’의 김정수 대표원장이 미용실 ‘구독자’에게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오픈갤러리 ⓒ시원상]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는 결제·정산 솔루션 기업 주오라의 창립자 티엔 추오가 만든 용어다. 그는 ‘제품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을 통해 반복적인 매출을 창출하고, 고객을 구매자에서 구독자(Subscriber)로 전환하는 산업 환경’을 구독 경제로 정의했다. 사전적으로 구독(購讀)은 책이나 신문, 잡지 등을 정기적으로 사 읽는다는 뜻이지만, ‘읽을거리’ 이외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사지 않고) 이용하는 최근의 비즈니스 형태를 가리킬 때도 편의상 이 단어를 쓴다.

구독 경제는 스타트업의 주요 도전 영역 가운데 하나다. 제휴를 맺은 200여 개 술집(주로 맥주를 파는 펍과 위스키, 칵테일 등을 파는 바)에서 무료 웰컴 드링크를 한 잔씩 제공받을 수 있는 ‘데일리샷’, 원화(原畵)를 3개월마다 바꿔 걸어주는 ‘오픈갤러리’, 2주 혹은 4주 단위로 꽃을 배송해주는 ‘꾸까’, 호텔식 수건을 매주 현관문 앞에 갖다 주는 ‘노블메이드’, 월 구독료를 내면 한 달 내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미용실 ‘월간헤어’ 등은 모두 설립된 지 짧게는 1년 미만, 길어야 5년 정도 된 회사들이다.

그렇다고 구독 서비스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겁 없는 스타트업만 도전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여기는 것은 오해다. 2017년 미국에서 먼저 하이브리드 자동차 아이오닉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던 현대자동차는 최근 국내에 ‘제네시스 스펙트럼’과 ‘현대셀렉션’이라는 자동차 구독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 월 구독료를 내면 제네시스 스펙트럼은 제네시스 브랜드 전 라인업을, 현대셀렉션은 쏘나타, 투싼, 벨로스터 3개 차종을 선택해 탈 수 있다. 자신이 원할 때 차종을 바꿔도 된다. 롯데렌터카도 최근 국산 및 수입 자동차를 맘대로 바꿔 탈 수 있는 구독 서비스 ‘오토체인지’를 내놨다. 아모레퍼시픽의 ‘스테디’는 마스크팩을, 애경산업의 ‘플로우’는 기초화장품 및 목욕제품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강경식(37) 씨는 정수기, 음식물처리기, 넷플릭스, 그리고 그림에 대해 월정액을 지불한다. ‘오픈갤러리’에 매달 3만9000원을 내고 10호 사이즈(50×45cm) 그림을 빌려 주방에 걸어놓고 식사할 때마다 감상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신혼 때는 집안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그림을 선택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꽃이나 동물이 그려진 그림을 고른다. 강씨는 “멀게만 느껴지던 원화를 집 안에 걸어놓고 때때로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아이도 그림을 좋아해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취향 중시 2030세대가 주로 이용

‘데일리샷’ 구독자는 가맹 펍에서 하루에 맥주 한 잔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최근 데일리샷과의 제휴를 개시한 수제맥주 펍 ‘더부스’의 매장. ‘벨루가’는 2주 간격으로 수제맥주를 집으로 배송해준다(왼쪽부터). [사진 제공 · 데일리샷 · 더부스 ·벨루가 홈페이지]
‘데일리샷’ 구독자는 가맹 펍에서 하루에 맥주 한 잔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최근 데일리샷과의 제휴를 개시한 수제맥주 펍 ‘더부스’의 매장. ‘벨루가’는 2주 간격으로 수제맥주를 집으로 배송해준다(왼쪽부터). [사진 제공 · 데일리샷 · 더부스 ·벨루가 홈페이지]
구독 서비스의 주요 고객층은 강씨와 같은 2030세대. ‘소유’보다 ‘이용’에 가치를 두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개인 취향을 중시하는 이들 세대의 특성에 구독 서비스가 잘 부합한다. 현대셀렉션은 회원 50명을 한정 모집했는데, 많은 인원이 몰려 현재 100명가량의 고객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셀렉션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차량이 필요하거나 차량 구매 전 체험해보고 싶어 하는 고객도 있지만, 상당수가 새로운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어서 온 분들”이라고 말했다. ‘술담화’가 정기 배송하는 대상이 약주, 청주 등 전통주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80% 이상이 2030세대라고 한다. 김태훈 월간헤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고객 대부분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여성으로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고 전했다. ‘꾸까’를 통해 2주에 한 번씩 꽃을 배송 받는 회사원 조모(32·여) 씨는 “퇴근 후 집에서 꽃병이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 나만의 힐링 시간”이라며 “이런 ‘소확행’에 매달 2만~3만 원을 지불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구독 경제에서 편리한 서비스와 높은 ‘가성비’는 기본이다. 현대셀렉션의 경우 기존 렌털·리스와 달리 수수료 없이 언제든 자유롭게 서비스를 해지할 수 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간편하게 차량 예약이 가능하다. ‘데일리샷’ 구독료는 월 9900원. 한 달에 두어 번만 웰컴 드링크를 이용해도 ‘본전’을 뽑는다.

‘가성비’는 기본, ‘가심비’까지 만족시켜야

면도날, 과일, 호텔식 수건을 정기 배송하는 업체들(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와이즐리 홈페이지, 만나박스 홈페이지, 노블메이드 홈페이지]
면도날, 과일, 호텔식 수건을 정기 배송하는 업체들(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와이즐리 홈페이지, 만나박스 홈페이지, 노블메이드 홈페이지]
하지만 편리한 서비스와 높은 가성비를 갖췄다고 다 성공하진 않는다. 서비스 품질이 만족스러워야 하고,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까지 높아야 한다. 실제 인터넷에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본 후기들을 찾아보면 ‘약속한 배송 날짜를 어겼다’ ‘제품이 싱싱하지 않다’ ‘예약이 힘들다’ 등 불만이 꽤 많다. 이런 피드백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구독 서비스도 여럿이다. 일례로 2016년 의류 구독 서비스 ‘프로젝트 앤’을 선보였던 SK플래닛은 2년 만에 사업을 접고 말았다. 유명 명품 브랜드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신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빌려 입을 수 있도록 했는데(월 8만 원에 한 벌씩 4회 대여), 의류 공급이 고객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다 수익성 악화로 서비스를 중단한 것. 프로젝트 앤의 고객이던 회사원 김모(35·여) 씨는 “빌릴 수 있는 옷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는 옷은 항상 대여 중이어서 한 달만 사용하고 해지했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한 오픈갤러리 이후 몇몇 업체가 ‘그림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다 사라졌다. 홍지혜 오픈갤러리 큐레이터는 “우리 서비스는 매년 구독자 수가 2배가량 뛸 정도로 성장 중”이라며 “큐레이터 10여 명이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꾸준히 발굴하고, 고객의 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해 어떤 그림을 어디에 걸면 좋을지 컨설팅해주는 등 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노력한 점이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셀렉션 관계자는 “무엇보다 고객 선호도가 높은 차종과 최근 출시된 차종 위주로 서비스를 구성하고, 여러 명이 이용하는 차량인 만큼 차량 상태와 청결도를 최상으로 관리해야 고객 만족이 유지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성 고객’이 오히려 치명타 될라

현대자동차가 시범 서비스 중인 자동차 구독 서비스 ‘제네시스 스펙트럼’(왼쪽)과 ‘현대셀렉션’.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가 시범 서비스 중인 자동차 구독 서비스 ‘제네시스 스펙트럼’(왼쪽)과 ‘현대셀렉션’.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
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콘텐츠와 달리 일상생활 속의 상품·서비스는 변동비(variable cost) 때문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넷플릭스나 온라인 서점 리디북스는 구독자가 아무리 늘어도 서비스를 유지하는 데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디지털화된 영화와 전자책은 ‘복제’ 비용이 제로(0)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품, 의류, 자동차, 미용 서비스 등은 사정이 다르다. 구독자가 증가하거나 구독자당 이용량이 많아지는 것만큼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고객이 누리는 가성비가 업체에게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무비패스’는 월 9.95달러에 매일 한 편씩 극장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여 30만 명 이상 구독자를 확보하는 등 크게 성공했지만, ‘영화광’들의 적극적인 이용 탓에 비용이 많이 들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비패스가 영화관과 협력 모델을 만들지 않고, 영화관으로부터 티켓을 사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 패착이 됐다고 지적한다. 임 교수는 “다만 항공, 기차, 호텔, 극장 등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 상품·서비스(Perishable Goods)는 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매출 증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는 차량공유 서비스 이용자가 많아져 수익이 줄자,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달에 79유로(약 10만5000원)를 내면 무제한으로 기차에 탑승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미국 ‘서프웨어’는 미 서부와 유럽 일부 국가에서 월 2000달러(약 240만 원)에 비행기 무제한 탑승이 가능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이러한 구독 경제의 ‘허들’을 뛰어넘고자 노력한다. 김민욱 데일리샷 대표는 “웰컴 드링크를 제공받을 때 안주나 술을 추가 주문하는 것이 의무로, 이를 통해 가맹점주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3개 직영점(서울 경리단점·건국대점·광화문점)을 동시에 데일리샷에 합류시킨 수제맥주 펍 ‘더부스’의 이남경 리테일팀장은 “맥주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추가 주문이 들어온다면 업주 입장에서도 큰 부담은 아니고, 오히려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태훈 월간헤어 COO는 “미용실업계가 인센티브제로 운영되고 있어 고객에게 추가 시술이나 고가 제품을 강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타개하려고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월정액 미용실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구독 상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커피도 마시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는, 미용 서비스를 기본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거점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9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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