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한편에 의상 수백벌 구상… 출산 못지않은 창작의 고통 느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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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상 디자이너의 세계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캐릭터 옷과 소품으로 표현하는 직업
대본을 기초로 인물 캐릭터 구상, 대형 작품 의상은 1년 걸리기도
“내가 만든 옷 무대 오를 때 뿌듯”

대본만 보고도 캐릭터의 옷차림새와 시대상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배우들에게 모든 시공간을 입히는 무대의상 디자이너다. 고대 신화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외형과 내면을 옷이라는 시각 언어로 표현한다. 이들의 손에서 탄생한 무대 의상은 극 중 배우에게 큰 무기이자 날개가 된다.

최근 공연했거나 개막을 앞둔 작품의 무대의상 디자이너 조문수(58), 이수원(45), 유미진 씨(38)는 “우스갯소리로 무대의상 디자인을 ‘출산한다’고 할 만큼 힘든 창작 과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식처럼 소중한 옷이 배우에게 입혀져 빛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무대의상은 과거 무대 디자인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됐다. 그 때문에 무대, 조명 디자인과 함께 의상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무대의상은 점차 개별 전문 분야로 구분됐고 최근 연극, 뮤지컬, 오페라, 창극, 어린이극 등 장르별로 분화되고 있다.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맡은 조문수 디자이너는 “의상 디자이너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프로그램북 한 면에 제 얘기가 가득 담겨 극의 이해를 돕는 걸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무대의상 디자인의 시작은 대본이다. 인물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대본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막을 내린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의 이수원 디자이너는 “의상 의뢰를 받으면 대본부터 분석한다. 연출, 배우 상견례는 물론 대본 리딩에도 참석해 콘셉트를 잡고 끊임없이 자료 조사와 연구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시제품 제작, 배우 피팅, 리허설을 거치며 의상이 수정된다. 사고를 대비해 여벌의 옷도 만든다. 대형 작품의 경우 작업에만 1년이 걸리기도 한다.

무대의상 디자인은 일반 패션디자인과 달리 ‘복합예술’의 특성을 갖는다. 옷 자체만 주목받기보다는 무대와의 조화를 고려해 배역을 빛나게 해야 한다. 조 디자이너는 “옷으로 배경을 설명하고 캐릭터를 완성하기 때문에 옷에 대한 태도가 패션디자이너와 다르다”고 했다.

작품별 특징에 따라 작업은 천차만별이다. 공연 중인 아동 뮤지컬 ‘로빈슨 크루소’를 맡은 유미진 디자이너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맡게 직관적, 동화적인 원색을 주로 사용했다. 캐릭터도 선명하게 드러내고 안무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엑스칼리버’에서는 70여 명이 등장하는 전투 장면을 위해 144벌의 옷을 제작했다.

무대의상 디자인 환경은 해외에 비해 아직 열악하다. 전공학과도 많지 않다. 예산 문제도 늘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끊임없이 옷감을 손질하는 이유는 뭘까.

“첫 공연이 끝나는 그 순간 때문에 합니다. 힘든 것도 다 잊게 되거든요.”(조문수)

“캐릭터에 나만의 영감을 표현할 자료나 이미지를 조사하고 퍼즐처럼 맞춰갈 때 가장 행복해요.”(이수원)

“내가 만든 옷이 무대에 올랐을 때 ‘이렇게 아름다웠나’ 싶을 때가 있답니다.”(유미진)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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