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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대기업 임원이 스타트업으로…“안녕하세요, 제 꿈은 ‘셀럽’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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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대기업 임원이 스타트업으로…“안녕하세요, 제 꿈은 ‘셀럽’입니다만”

강지남 기자 입력 2019-04-23 10:42수정 2019-04-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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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
‘위워크’ 을지로점에서 패셔니스타로도 ‘유명’
[박해윤 기자]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임원이란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고.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바로 짐을 싸야 하는 처지에 빗댄 농담이다. 그런데 농담만은 아니다. 당연히 자리를 지킬 줄로 믿고 있다 하루아침에 ‘짐 싸라’는 통보를 받는 이가 적잖다. 지성언(64) ㈜차이나다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LG패션 상하이법인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갑자기 서울 본사로 불려 들어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30여 년 ‘LG맨’ 인생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7년이 지났다. ‘잘린’ 그는 어떻게 됐을까. 낮에는 산에 오르고 저녁에는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을까. 그는 중국어 교육 스타트업 차이나다의 공동대표다. 근무처는 세계 최대 공유오피스 ‘위워크’의 서울 중구 을지로점. 인민일보 인터넷판 ‘인민망’ 고문으로 팟캐스트 패널로 출연하고, 신규 프로그램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네이버 ‘중국’판에 비정기적으로 중국 관련 글을 기고한다. 대학과 기업에서 중국 관련 강연 요청도 종종 받는다. LG상사와 LG패션의 중국 주재원으로 대만, 홍콩, 광저우, 상하이 등지에서 31년간 근무한 경력이 이런 일들의 밑바탕이 됐다. 1년 전 인스타그램을 시작, 1500여 명의 팔로어를 모았다. 주로 매일 아침 입고 나온 옷을 촬영한 ‘데일리 룩’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위워크 을지로점에선 이미 패셔니스타로 유명하다. 차이나다 합류 전에는 상하이에서 미국계 여성의류 브랜드의 중국 사업 총괄을 맡아 2년간 일했고, 길거리 캐스팅돼 TV 광고와 화보 모델로도 활약했다. 최근에는 작가로 데뷔했다. 책 제목은 ‘그레이트 그레이’(Great Grey·라온북). 부제는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어른을 위한 안티에이징 라이프 플랜’이다.

■‘그레이트 그레이’

[지성언 인스타그램]
위워크 을지로점에서 만난 지 대표는 듣던 대로 패셔너블했다. 푸른 셔츠에 헤링본 무늬가 들어간 밝은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날이라고 특별히 넥타이를 맸는데, 짙은 감색의 폭 좁은 니트 넥타이였다. 갈색 구두 안에 신은 양말은 왼쪽은 자주색, 오른쪽은 녹색인 ‘짝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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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정확한 나이가 궁금하다.

“55세다. 환갑이 된 때부터 매년 한 살씩 나이를 줄이기로 했다.(웃음) 박원순 서울시장과 고교 동기다. 애들이 일찍 결혼한 편이라 초등학교 4학년부터 네 살까지 손주가 넷 있다.”

책 제목 ‘그레이트 그레이’는 직접 만든 말인가.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고심해 만든 말이다(그의 계정은 @great_grey). 은퇴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은퇴 이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글을 쓰면서 ‘멋진 어른 남자’ ‘두 번 사는 남자’ 등 책 제목을 엄청 고민했는데, 출판사에서 ‘그레이트 그레이’로 하자고 했다. 주변에서 책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다고들 한다.”

대기업에서 ‘잘렸어도’ 중국어는 물론 중국 비즈니스에 정통한 그다. LG패션 상하이법인장에서 내려온 이후 고문으로 2년 더 재직하다 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미국 회사로 옮겼다. 그러다 우연히 차이나다 관련 뉴스를 접하고 무작정 손편지를 보냈다.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상하이 푸단대 출신 창업자들에게 한국인 선배로서 보내는 응원의 편지였다. 이것이 인연이 돼 김선우 차이나다 대표와 연락을 주고받았고 2016년 회사 합류를 제안받았다. 창업 6년 차 스타트업이 보내온 ‘스카우트 조건’에 그는 5분 만에 “수락한다”는 답장을 보냈다고 했다.

대우가 좋았을 리 없을 텐데.


“협상을 시도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받아온 연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으니까.(웃음) 오래전부터 은퇴한 후에는 돈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살 게 없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내가 즐겁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차이나다는 현재 중국어 교육 서비스 ‘차이나탄’ 위주로 사업을 하지만, 당나라 때 신라방과 같이 중국과 한국을 잇는 가교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 31년간 중국에서 일한 내 경험이 도움되리라 생각했다.”

전 세계 위워크 최초의 ‘학원’ 멤버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의 인스타그램. 주로 매일 아침 입고 나온 옷을 촬영한 ‘데일리 룩’을 게시하고 있다. [지성언 인스타그램]
차이나다에 합류하자마자 그에게 내려진 ‘미션’은 그동안 온라인 강좌만 있던 차이나탄의 오프라인 ‘캠프’(학원)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 대표는 1년 만에 세 곳, 또 1년 만에 네 곳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그런데 총 7개의 차이나탄 캠프 가운데 3개가 위워크 내에 있다. 사무용 공간에 학원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지 대표가 위워크 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성사시킨 일이다.

학원사업을 해본 적이 없지 않나.

“1970년대 중반 대입 재수를 하느라 학원에 다녔던 게 전부다. 그런데 패션사업도 ‘부동산 입지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학원사업과 닮았다. 강남역 일대를 신발 닳도록 돌아다니며 입주할 빌딩을 골랐다. 또 젊은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일본 쓰타야 서점 등을 벤치마킹했다. 덕분에 차이나탄 캠프는 ‘학원 같지 않다, 카페 같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왜 위워크에 입점했나.

“학원도 패션 브랜드처럼 브랜드 포지셔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위워크는 세계 최대 공유오피스다. 차이나탄 캠프를 위워크에 만들면 위워크 브랜드를 우리 쪽으로 끌어오는 효과가 발생한다. 또 수강생 모집에도 유리하다. 위워크 내 차이나탄 캠프에서 중국어 수업을 듣는 수강생 중 위워크에 입주한 사람이 40%가량 된다. 반응이 좋으니 위워크가 광화문점과 여의도점을 열면서 차이나탄 캠프 입주를 먼저 요청해왔다.”

김선우 대표는 1982년생으로 지 대표의 아들보다 두 살 많다. 아들뻘 창업자, 그리고 아들보다 한참 어린 직원들과 어울려 일하는 게 어렵진 않을까. 그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고 했다. 청년들 못지않은 패션 감각을 뽐내는 것도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다. 그는 “직원들이 날 어려워하는 점도 없진 않겠지만, 원래 권위 의식이 없는 성격이라 스스럼없이 어울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활기차게 돌아다니다 보니 위워크 매니저들이나 다른 회사 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낸다”며 “특히 ‘틱톡’의 중국인 직원들과 친해져 그들이 차이나탄 홍보 영상을 틱톡에 올려주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일해보니 어떤가.

“먼저 안됐다는 마음이 든다. 우리 세대는 취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이들 세대에겐 취업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다. 아직 경험이 적으니까 전반적으로 불안한 점이 있지만, 그 대신 매우 창의적이고 빨리 받아들이며 빨리 변화할 줄 안다. 바로 실행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 개선해간다. 이러한 유연성은 대기업 조직에선 보기 힘든 강점이다.”

“바지통부터 좁혀라”

지 대표는 패셔니스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위워크에서는 중년 패션 에이전시 ‘헬로우젠틀’ 권정현 대표의 눈에 띄어 그의 피사체가 됐다. 매일 아침 출근 전 둘이 만나 지 대표가 모델이 되고 권 대표가 사진을 찍는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사진들은 젊은 층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지 대표가 처음부터 ‘패션피플’이었던 것은 아니다. 50대 접어들어 LG상사에서 LG패션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양복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부장님 패션’을 버렸다. 그는 “당시 옷과 구두를 엄청 사들여 아내가 기함을 했다”고 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몸무게도 10kg가량 줄였다.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자리에 앉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되도록 한두 정거장은 걸어서 간다. 달리는 지하철의 움직임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그는 ‘지하철 서핑’이라 부른다. 동행한 사람이 자리에 앉자고 하면 “어, 나는 서핑할 거야” 한단다.

패션 아이템을 얼마나 갖고 있나.

“청바지는 30벌이 넘고 신발은 30~40켤레쯤 된다. 가방도 한 20개 되고…. 차이나다 직원들이 내 생일마다 선물 고르는 게 고역이라고 한다. ‘웬만한 것은 마음에 안 드실 텐데’ 한다는 거다. 얼마 전에는 교회에서 ‘당신, 이멜다 여사냐’라는 말도 들었다.(웃음)”

그는 책에 중년 남성을 위한 몇 가지 패션 조언을 실었다(Tip 참조). 그중에는 팔찌 같은 액세서리를 활용하라는 대목도 있다. 실제 그의 팔목에는 가느다란 팔찌 두 개가 엇갈려 매어져 있었다. 상상(?)과 달리 과하지 않다. 젊고 ‘쿨’해 보인다.

“평소에는 갈색 가죽 팔찌 하나만 하는데, 오늘은 변화를 주고 싶어 재킷과 맞춰 헤링본 무늬 팔찌를 하나 더 했다. 그런데 그냥 하기는 심심해 보여 팔찌 두 개를 꼬아서 채워봤다. 괜찮지 않나.”

패션에 관심 많은 중년 남성을 위해 꼭 한 가지를 조언한다면?

“바지통 좁히고 바지 길이 자르는 게 급선무다. 패션에서 상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바지 핏이 핵심이다. 바지 밑단 너비는 18cm여야 한다. 다리가 굵다면 19cm까지는 오케이다. 바지 길이는 복숭아뼈 중간, 혹은 중간에서 살짝 위 정도로 잘라버려라. 굳이 새로 사지 말고 수선하면 된다.”

“나이 들수록 패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무대다. 은퇴하더라도 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조연으로, 소품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대 풍경을 망쳐선 안 된다. 오히려 더 멋진 존재가 돼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야 분위기를 살리고, 주변 사람들이 좋아한다. ‘누가 날 본다고…’ 하는데, 다들 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보지 않나.”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박해윤 기자]
나이 들어 사회생활에서 물러나는 것을 한국에서는 은퇴(隱退), 중국에서는 퇴휴(退休)라 한다. 그는 “한국은 숨을 은(隱)을 써 은퇴를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리는 것’으로 여기지만, 중국은 ‘물러나서 쉰다’는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차이”라며 “100세 시대에 50대의 은퇴는 중휴(中休)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는 인생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는 중간 휴식(인터미션)이라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인생 2막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인생 2막에서 속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방향이 중요하다. 맞는 방향으로 꾸준히 계속 조금씩 가면 된다. 계속 가기 어렵다면 쉬었다 가기를 반복해도 괜찮다. 인생 2막의 성공은 어떤 특정 목표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방향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결정한다. 언제 어느 때 인생 2막이 막을 내리더라도 그 순간 방향이 맞는다면 그게 성공이다.’

장래 희망이 뭔가.

“유명한 셀럽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반인 셀럽’이 되고 싶다. 가족, 친지, 친구, 그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의 친구들이 지성언에게서 세상과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유쾌함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옷과 공간 등 일상생활 속에 패션을 입히고 싶다. 연극도 좋아하는데, 꼭 배우로서 무대에 서보고 싶다. 디지펀아트(디지털 기기를 통해 즐기는 예술)도 배울 생각이다.”

은퇴 선배로서 은퇴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거기서부터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해야 한다. 인생 2막에서 가장 우선시할 것은 자신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골드스타 냉장고를 중화권에 최초로 판 사람이 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30여 년간 직장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엄청난 실적을 올렸을 때가 아니라, 새로 이사한 사무실을 꾸밀 때였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 대표를 맡고 있는 오준 전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가 내 친구다. 걔한테 얼마 전에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무척 좋다고, 보람 있고 엄청 행복하다고 하더라. 은퇴 후 인생은 이래야 한다.”


▶Tip 지성언이 제안하는 중년 남성 패션



⊙ 비싼 옷을 입어야 옷맵시가 좋은 게 아니라, 옷맵시가 나면 비싸 보인다
⊙ 크게 입지 말라. 복숭아뼈를 감추지 말라.
⊙ 구두는 브라운 컬러가 정석이다. 검은색 구두는 깊숙이 넣어둬라.
⊙ 안경에 투자하라. 투자 대비 효과 만점이다.
⊙ 팔찌도 잘만 하면 남성미를 물씬 풍길 수 있다.
⊙ 겨울에는 비니(두건처럼 머리에 딱 달라붙게 쓰는 모자)를 시도하라. 20년은 더 젊어 보일 수 있다.
⊙ 비듬 떨어진 명품은 최악이다. 나이 들수록 자주 씻어라.
⊙ 옷은 자주 빨아 입고 다려 입어라.
⊙ 최종적으로 외모를 결정짓는 것은 내게서 풍기는 기운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85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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