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54〉잠수함과 냄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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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벌어진 세계대전은 지구상의 전 대륙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동시에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를 땅과 바다에서 하늘과 바닷속으로까지 확대했다. 바닷속 전투의 주인공인 잠수함은 20세기의 전쟁사를 바꾼 놀라운 병기가 되었다.

지금도 잠수함은 가장 비밀스럽고 공포스러운 존재다. 그 대신 이 공포의 병기는 승무원들에게 특별한 헌신과 고통을 요구했다. 2차대전 당시 잠수함 승무원의 생활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바닥은 언제나 흥건히 고여 있고, 잠수함 내의 습도는 너무 높아 예전 목욕탕처럼 물이 뚝뚝 떨어졌다. 빵은 일주일이면 곰팡이가 슬었고, 채소와 과일은 상하기 전에 먼저 먹어야 했다. 당연히 식사가 영양 불균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고통은 냄새였다. 실내는 디젤유, 윤활유, 오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있으면 땀과 사람에게서 나는 모든 악취가 더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실내는 습하고 더운데, 물을 절약하기 위해 면도도 샤워도 금지였다. 아무리 고참병이라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가장 그리운 것도 사람 냄새였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 사는 세상의 냄새였다. 망망대해에서 잠수함이란 밀폐된 공간에서의 생활이 주는 고립감, 폐쇄된 생활의 고통은 2개월 정도가 한계였다. 식량, 연료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보통 2개월이면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물 밖 세상으로 나오면 사람 사는 세상은 또 다른 고통과 부조리, 질투와 시기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면 특별한 유대감으로 뭉쳐 있는 잠수함의 생활이 그리워졌다.

사람 냄새에 토하고, 사람 냄새가 그리워 고통이 된다. 궤변 같지만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이곳저곳 다녀 보아도 고통이 없는 곳은 없다. 사람에게 고통받으면서 사람에게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아이러니 같지만 그것이 인생이고, 더 향기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임용한 역사학자
#세계대전#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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