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드갈의 한국 블로그]한국어 수업보다 어려운 ‘술 문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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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대학원행정학과재학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대학원행정학과재학
며칠 전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친한 동생을 만났다. 그 친구와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술 게임’이라고 했다.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랐다. 사실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할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과거 나의 학부 생활이 떠올랐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연히 학교에서 술을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스무 살에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술은 내게 ‘너무나 먼 것’이 돼버렸다. 물론 술을 안 마셨을 뿐, 한국 학생들이 술을 얼마나 잘 마시고, 술로 어떻게 노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특히 술 놀이와 관련해서는 규칙을 잘 모르는 유학생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게임이었다. 잘못된 술 문화가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한국인들은 술을 같이 먹어야 정들고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술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가? 어른들은 이 같은 의문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의식 없이 후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술로 인한 여러 범죄가 일어나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가볍게 형을 내리는 것 같아 아쉽다. 왜 술을 마셨다고 하면 벌이 가벼워지는지 알 수 없다.

TV, 인터넷에 등장하는 술 광고는 대부분 술을 마시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처럼 연출한다. 이뿐만 아니라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연예인들의 음주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만 12세 이상 아이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술이 등장한다. 이를 보는 아이들에게 ‘술은 어른들 세계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 같다.

술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술자리 문화의 문제점과 술 광고의 문제점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술 때문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술 광고를 내는 주류 회사들은 이에 대해 보상해주지 않는다. 개인이 해결할 문제라며 나 몰라라 하면 잘못된 술 문화는 계속 존재할지 모른다.

필자는 서울역 인근에 거주한다. 출퇴근 시간에 ‘초록병’을 안고 있는 수십 명의 노숙자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사회에서 감추고 싶은 이들도 한때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술에만 의존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이들을 구할 방법은 없는가 하는 생각도 수십 번 들었다. 그렇다면 술을 종교적인 이유로 안 하는 나라에는 노숙자가 없을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적어도 술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적을 것이다.

해외는 어떨까. ‘한국만큼 술 광고를 대놓고 하나’라는 질문에 필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은 세계인들에게 ‘빠름’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술 문화만큼 느리게 발전하는 건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좋게 변하는 문화 중 하나는 바로 일회용품 안 쓰기다. 정부 규제를 통해 사람들은 다회용 컵과 에코백을 소지하고 쇼핑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반대로 군대에서 1일부터 시행된 군 장병 일과 후 휴대전화 전면 허용 정책은 옳은 것일까. 필자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군인에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군대의 고유문화를 그르치는 일이라 생각한다.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군인들이 무제한 요금제로 원하는 것을 하게 된다면 군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필자는 한국 군대에 가본 적 없지만 남편과 아주버님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모두 직업군인 출신으로서 평상시에 군인과 관련한 일들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 아직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정책이지만 올바른 일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지켜야 할 전통과 문화가 있다. 역할과 위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술 문화는 이제 안 지켜도 좋은 문화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TV, 인터넷상 술 광고를 ‘일회용품 사용 금지령’을 내린 것처럼 규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술#술자리 문화#일회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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