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정은 비핵화 의지 안믿는 美… 대북특사로 뛴 정의용에도 불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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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회의 참석한 정의용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미 이상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까지 남북은 
물론이고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靑회의 참석한 정의용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미 이상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까지 남북은 물론이고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노이 결렬’이 28일로 한 달을 맞는 가운데 화려한 정상외교의 그늘에 가려진 남북미 간의 이견과 갈등이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유례없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던 비핵화 협상이 하노이에서 궤도를 이탈하자 남북미 3각 구도의 실타래가 더욱 꼬여가는 형국이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목해 ‘거짓말쟁이(liar)’라고 비판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부가 비핵화 협상 촉진에 앞서 한미관계 봉합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남북에 불만 쏟아낸 트럼프의 북핵 키맨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 12월 초 김 위원장과 정 실장에 대해 잇따라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 김 위원장은 ‘라이어’다. 도대체 믿지 못할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초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북-미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저울질하며 신경전을 벌이던 때다. 앞서 11월 초 미국 뉴욕에서 개최하려던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폼페이오 장관 간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다. 대화의 불씨를 살려가던 시기에 나온 ‘라이어’ 발언은 네 차례나 평양을 다녀왔는데도 폼페이오 장관이 여전히 북한을 불신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폼페이오의 핵심 측근인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20일 비공개 강연에서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입장이 일관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미 대화를 이끈 트럼프 행정부 내 ‘키맨’들 사이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심이 확산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후 한국 정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선 지난해 9월 2차 대북특사로 방북해 북-미 대화 재개의 물꼬를 텄던 정 실장에 대해서도 ‘라이어’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이 전달한 김 위원장의 ‘비핵화 메시지’가 사실과 다른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풀이된다. 하노이 회담에서 ‘비핵화 개념 정의’를 요구하며 합의를 무산시킨 트럼프 행정부가 회담 전부터 북한은 물론이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연대 보증’한 한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고 책임을 물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센터장은 20일 강연에서 청와대를 겨냥해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는 것과 관련해 미국이 청와대 측에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한미 간 오해부터 정리해야

미국은 결국 믿을 건 북한도, 한국도 아닌 독자적 결단이라는 입장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추가 대북제재를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까지 거센 비판을 쏟아내면서 ‘촉진자’를 자처한 한국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5일 “대북제재의 틀 내에서 북남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남측 입장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외교 우선순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비핵화에 대한 북-미 이견이 확인된 만큼 한미 간에 쌓인 불필요한 오해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이 시점에선 비핵화 정의에 대해 확실히 하는 방향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며 “북한에 특사를 보낸다면 (북한을) 설득하는 특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 간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을 찾아내는 노력을 한 뒤 한미 정상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 기자
#미국#폼페이오 국무장관#김정은#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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