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차진아]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는 어디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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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극단적 반목 되풀이, 한국 정치의 문제는 ‘승자독식’
국회·사법부 압도하는 대통령의 힘… 통제할 수단 없는 상황은 위험
제왕적 대통령·승자독식 해소해야 건설적 대화와 타협의 길 열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동안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고 있다. 물론 과거와 같은 장기집권, 노골적인 독재는 출현하지 않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분명 나아진 측면들이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로 편이 갈려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은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서로를 향해 군사독재 시절보다 못하다는 비난을 마구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는 어디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승자독식이라 일컬어진다. 정권을 쥐면, 대통령을 배출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문제의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하여 대법관,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사권을 통해 사법부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도, 말은 삼권분립이라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이 국회나 사법부의 권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입법부 및 사법부에 미치는 사실상의 영향력까지 고려하면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한 권력이 되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통령 직에서 내려오게 했다고, 따라서 대통령도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통제된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당시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얼마나 힘들게 그런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겨우내 촛불을 들고 전국 곳곳에 모여 목소리를 높여야 했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 그러한 매우 특별한 열정과 행동이 없었다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정국은 극단적인 대립과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을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파국을 막았다고 해서 나중에 유사한 문제가 또 발생해도 된다고, 그렇게 될 경우 다시 국민이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얼마나 무책임한 정치인가.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 이와 맞물려 있는 승자독식의 정치문화,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당은 모든 것을 갖고 야당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무슨 진정한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입으로는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진영논리에 갇혀 자기만이, 자기 집단과 자기편만이 옳고 정의롭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주장은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오히려 상대 진영을 궤멸시키고 수십 년 장기집권하겠다는 오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진정한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겠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이 180도 달라지는 모습을 국민은 여러 차례 목도하였다. 그로 인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나 반대 여부를 떠나 정치권 전체를 불신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이른바 진성 당원이 많지 않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해도 민주화 이후 정당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국민이 오히려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회비 내고 자원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정당들은 어떤 자기반성을 했는가.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가장 선진적인 나라에서도 국민의 정치 불신은 작지 않다. 하지만 이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결정적인 차이는 정당들 사이의 상호존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이다. 이를 통해 정치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가질 수 있고 현재의 정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내일의 개선된 정치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적대적인 대립을 계속하는 여야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는 기존의 틀을 깰 개혁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연 누가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도 또다시 국민의 몫이라고 말할 것인가. 이제는 정치권도 주도적으로 진정한 개혁을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왕적 대통령#국회#승자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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