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安의사 주변 이름없는 영웅들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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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서 카리스마 넘치는 안중근 역의 양준모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양준모가 동료가 죽고 난 뒤 성당에서 고뇌하는 장면. 그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오른쪽)가 상상 속에 등장해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뜻을 이루라”고 말한다. 쇼온컴퍼니 제공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양준모가 동료가 죽고 난 뒤 성당에서 고뇌하는 장면. 그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오른쪽)가 상상 속에 등장해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뜻을 이루라”고 말한다. 쇼온컴퍼니 제공
“늘 장엄한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역할이 많았어요. 이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때론 밝은 모습의 생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하하.”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배우 양준모(39)가 이런 농담을 던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그간 주로 맡았던 역할이 전봉준이나 고종, 흥선대원군 등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18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안 의사 역할을 위해 애지중지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저보다 어린 나이에 선조들이 나라를 걱정했던 마음을 떠올리면 늘 감격스럽다”며 “‘영웅’ 초연작을 보고 객석에서 눈이 붓도록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안 의사를 처음 맡은 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단지동맹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해 대표 넘버 ‘장부가’를 열창했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그가 느낀 감격은 무대에 그대로 이어진다. 최근엔 공연 도중 울컥한 마음에 본인도 모르게 소소한 ‘애드리브 연기’를 하다 상대 배역을 당황케 한 적도 있다.

“결사를 앞두고 ‘그날을 기약하며’라는 넘버를 부르는 장면에서 유독 짠한 마음이 들었어요. 노래하다 저도 모르게 상대 배우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예정에 없던 동작에 상대 배우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또 하루는 사형을 앞둔 장면에서 일본인 간수 ‘지바’가 너무 고마웠어요. 저도 모르게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노래했습니다. 나중엔 언제 손을 놓을지 애매해졌죠.”

정통 성악을 전공한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마음을 굳힌 건 2005년 평양에서 열린 가극 ‘금강’ 공연 이후다. 당시엔 동학군 역할을 맡았다. 강신일, 오만석 등과 무대에 올랐던 감동을 잊지 못했다. 양준모는 “성악 공부를 위해 계획된 유학 비자와 대학도 다 취소했고 ‘난 무대에 남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털어놨다.

어느덧 16년 차 배우인 그는 무대 위 안 의사보다도 이름도 없이 사라진 무명 독립영웅들을 더 챙기게 됐다. 자신보단 동료, 선후배 배우들과의 ‘케미’에 더 신경 쓴다. 그는 “손가락을 자르며 결의를 다지는 ‘단지동맹’ 12인 영웅 중엔 실명이 밝혀진 이가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며 “‘나 안중근, 이 한 손가락’ 대신 ‘우리’라는 대사를 넣어 모두가 함께하는 행동임을 보여주자고 제작진에 건의해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양준모는 요즘도 관객들 반응을 살핀다. 다만 예전과 다르게 ‘양준모 잘한다’보다 ‘작품이 너무 좋다’는 후기에 더 눈길이 간다고. 그는 “제가 덜 돋보이더라도 관객들이 안 의사 주변의 수많은 영웅을 더 눈여겨봐 주셨음 한다”며 멋쩍은 웃음을 내비쳤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영웅#안중근 의사#양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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