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한 환경-스트레스가 치매 일으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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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훈 KIST 뇌과학연구소 단장
“식습관-직업 등 환경이 근원… 신체 활동 치매예방에 도움”

류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장은 미국과 한국의 의대와 연구소에서 퇴행성 뇌질환을 연구해 왔다. 스트레스 등 환경이 치매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 있다.
류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장은 미국과 한국의 의대와 연구소에서 퇴행성 뇌질환을 연구해 왔다. 스트레스 등 환경이 치매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 있다.
세계 의학의 심장, 미국 보스턴대 의대에서 교수를 하다 국내에 온 치매 전문가는 금기가 없었다. 아침부터 설명을 위해 ‘무덤’을 비유로 들었다.

“무덤이 있고 묘비가 세워져 있다고 해보세요. 묘비의 이름을 바꾼다고 무덤의 주인이 바뀌지 않지요? 근원(사람)을 바꿔야 합니다. 치매도 비슷합니다. 치료하려면 진짜 근원,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류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은 치매를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될 법한 말을 했다. 그동안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치매가 실은 후천적 환경의 영향으로 생기며, 환경을 잘 관리하면 발생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많은 뇌과학자들이 치매와 관련이 있는 물질인 ‘아밀로이드베타’와 같은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을 연구하지만 신약 개발 성공률이 1% 미만으로 낮다”면서 “근본 치료를 위해 환경 연구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쌍둥이 형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똑같이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해군 복무를 한 뒤 한 명은 제초제 회사에서,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제초제 회사에서 일한 사람은 심각한 알츠하이머 치매로 고통받다 사망했고, 다른 한 명은 정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쌍둥이인 두 사람의 DNA는 같습니다. 유독한 환경과 스트레스가 치매를 일으킨 겁니다.”

언뜻 상식적이다. 그는 한층 더 깊이 파고들어 갔다. 실제 환자의 임상 사례를 거슬러 올라가 뇌 속 유전자와 분자의 변화를 연구했다. 그는 환경이 ‘DNA를 읽고 쓰는 법’을 바꿨을 가능성을 살폈다. 똑같은 책을 주고 집게로 페이지 여기저기를 읽지 못하게 집으면 읽는 내용이 바뀐다. 우리 몸의 DNA도 마찬가지여서 같은 DNA를 지닌 쌍둥이도 집게로 일부분을 집으면 DNA라는 책을 ‘읽는 법’이 달라진다. 그 결과 걸리는 병과 신체 특성도 달라진다. 치매도 그 결과다. 그는 실제 환자의 뇌에서 이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인 DNA 구조 변화 현상(히스톤 응축)까지 밝혀냈다.

올해 3월 초 KIST로 자리를 옮긴 그는 미국에서 환자의 뇌를 연구하다 왔지만 뜻밖에도 의사 출신이 아니다. 한국, 그것도 수도권 밖의 국립대에서 동물학으로 박사를 마친 토종 과학자다. 의대와 비(非)의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벽이 강한 한국에서 그는 일찍부터 공동연구의 중요성을 깨달아 의대의 벽을 넘나들며 연구했고, 하버드대 의대와 보스턴대 의대 등에서 교수로 활약하다 귀국했다. 귀국한 이유에 대해 “생물학부터 공학까지 4개 분야 센터가 융합연구를 하는 독특한 뇌과학연구소에서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할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실한 한국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는 보람도 크다.

헤어지기 전, 치매 예방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독성물질과 낙상 등에 의한 충격은 치매 가능성을 높이고, 운동 등 신체 활동과 커리(카레), 지중해식 식사는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특히 운동을 강조했다. ‘운동이 쉽지 않으니 매일 커리를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을 읽은 듯 그가 덧붙였다. “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인식 전환, 그리고 국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돕는 복지가 진짜 치매 예방법 아닐까요.”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치매#k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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