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수]역할을 다한 ‘대졸 공채’… 그 자리 뭘로 대체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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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진짜 정부가 괜찮대요?”

현대·기아자동차가 대졸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공채)을 폐지한다고 밝힌 날, 재계는 “현대차가 총대를 멨다”며 놀라워했다. 한 관계자는 “수시 채용을 확대하고 싶긴 한데 정부 눈치가 보여서…”라고 말을 흐렸다. 정기 공채 폐지가 정부의 일자리 창출 노력에 반하는 모양새로 비칠까 우려돼 수시 채용 전환을 못 했다는 의미다. 재계는 현대·기아차가 수시 채용 규모를 공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점을 들어 정부를 설득했다고 보고 있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어차피 채용 인원은 통계로 남기 때문에 채용 인원을 확 줄이긴 어렵다”고 말했다.

대규모 대졸 공채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종신고용과 함께 한국, 일본 기업의 3대 고용 특징으로 꼽힌다. 모두 일본에서 왔다. 1910년대 일본은 기계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는데 숙련된 인력이 부족했다. 대기업이 직접 인력교육을 맡기로 하면서 대규모 공채가 시작됐다. 공들여 교육한 신입사원이 이직하면 손해니 직원이 오래 다닐수록 돈을 더 많이 주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생겼다. 직원은 어떤 직무가 주어지든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버티고, 회사는 종신고용으로 보상해줬다. 이런 3가지 고용 특징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고성장 비결이었다.

기수문화 때문에 실무에 능한 사람도 억지로 관리직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고, 개인보다는 부서의 공동 성과와 책임이 더 중요해서 잘하는 사람에게만 일이 몰리는 비효율도 발생했다. 그래도 한국이 패스트 팔로어일 때에는 장점이 단점보다 컸다. 앞에서 ‘돌격’ 하면 다같이 뛰어가기에 제격이었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원치 않는 직무, 충성을 요구하는 조직문화를 답답해했다. 이미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종신고용 관행이 흔들리기도 했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부작용이 더 커졌다. 빨리 시도하고, 실패도 빨리 해봐야 새로운 시도를 다시 하는 ‘애자일(Agile·민첩한) 경영’의 걸림돌이 됐다.

현대·기아차가 갖가지 오해에도 정기 공채 폐지를 감행한 것은 이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요즘, 자율주행 인재가 현대자동차인적성검사(HMAT)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길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잘못된 사람을 뽑았을 때 기업은 손해가 막심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다 보니 20∼30년 임금, 교육비,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신입사원 한 명당 20억∼30억 원을 장기 투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일본도 바뀌고 있다. 그동안 일본 기업은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같은 경단련 가이드라인에 따라 3월에 입사설명회, 6월에 면접이라는 일정을 갖고 많은 기업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초봉으로 채용해 왔다. 하지만 2015년 소프트뱅크 등 혁신기업들이 수시 채용을 선언했고, 신입사원 초봉도 올려버렸다. 인재를 선점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경단련도 지난해 말 “이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뽑도록 해야 한다. 2021년부터 가이드라인을 고치겠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의 인재 선점 전쟁에서 자국 기업이 질 수 있다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현대차를 시작으로 수시 채용과 직무 기반 연봉제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필요할 때 인재를 싹쓸이하고 프로젝트를 접으면 대량 해고하는 구글 애플 같은 미국 기업식 운용은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만의 새로운 고용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대졸 공채#현대·기아자동차#대졸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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