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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실록한의학]〈70〉정월 대보름에 귀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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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실록한의학]〈70〉정월 대보름에 귀를 밝혀라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입력 2019-02-18 03:00수정 2019-02-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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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금주령으로 서슬이 퍼렜던 영조 시대에도 군신 간 음주가무의 기록은 존재한다. 영조 44년 임금의 생일상이 차려지자 영의정 김치인과 이조판서 조명정이 많이 취해 술 실력을 자랑한다. 평소 술을 싫어한 ‘금주 대왕’ 영조는 이상하게도 이날만큼은 신하들에게 술을 권했다. 왜 그랬을까. 의문은 영조가 술을 권하면서 가져다 붙인 명분이다. 영조는 난청이 있었던 조명정에게 ‘귀를 밝히는 술이니 마음껏 마시라’고 권했다. 술이 귀를 밝힌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황현의 시문집인 ‘매천집’에는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인 ‘이명주(耳明酒)’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다. 이명주는 ‘귀가 먹는 것을 막아 준다’는 술로, 정월 대보름 아침에 온 가족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치롱주(治聾酒), 명이주(明耳酒), 총이주(聰耳酒)로도 불린다.

소리를 듣는 영역은 두 가지로 나뉜다. 외부의 소리를 비추는 음적인 영역과 분별하는 양적인 영역이 그것이다. 비추는 영역은 물에 사물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수영물(水影物)’이라 하며, 분별하는 영역은 태양이 빛나면 환하게 사물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영역이어서 명(明)이라 한다. ‘귀를 밝힌다’는 것은 거꾸로 해석하면 ‘귀는 본래 어둡다’는 뜻이 된다.

한의학적으로 귀는 음적이고 어두운 기관이다. 생긴 모양도 소라고둥처럼 속으로 수축한다. 외부의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같다. 이렇듯 감각을 담당하는 오관 중에서 가장 차고 어두운 기관이다.

그래서 청력은 어둠을 찾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눈은 밝은 곳에서 정보를 모으지만 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보를 모은다. 공포영화에서 소리를 빼면 팥소 없는 찐빵이 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한의학에서 귀는 겨울과 차가움, 물과 신장을 상징한다. 노자는 ‘물은 가장 낮은 바다로 내려가 모든 계곡의 물을 다스리면서 가장 위대해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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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밝이술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다. 술은 맵고 더워서 어둠을 밝히면서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신다고 청력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장기적 음주는 오히려 청력의 적이다. 귀밝이술을 마시는 것은 단지 정월 대보름에 음양오행의 지혜를 돌아보는 의식일 뿐이다.

귀의 별명은 ‘공한(空閒)’이다. 고요함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이 텅 비어 한가함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대나무밭에 가면 대나무 소리가 나고 소나무밭에 가면 소나무 소리가 나듯 바람이나 자극은 외부로부터 오지만 소리를 내는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인 셈이다. 들어오는 소리만큼 메아리를 만들고 공명해야 하니 귀는 늘 피로하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커다란 음악처럼 큰 소리의 자극이 계속되면 귓속의 유모세포는 울음을 토한다. 그게 바로 귀(耳)가 웅웅거리며 우는(鳴) 이명(耳鳴)이다. 병은 한번 오면 치료하기 힘들다. 생활 속 지혜의 실천으로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눈이 어두우면 사물과 멀어지고 귀가 어두우면 사람과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청력은 나이가 들수록 소중해진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정월 대보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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