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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3번 죽었다, 모두 추락사”…VR 안전교육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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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3번 죽었다, 모두 추락사”…VR 안전교육 체험해보니

김예윤기자 입력 2019-02-17 16:29수정 2019-02-1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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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암사동 광역철도 별내선(서울지하철 8호선 연장) 건설현장. 최근 이곳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는 총 3번 죽었다. 모두 추락사였다.

첫 번째 추락은 지상 수십 미터 비계에서 안전난간을 잡고 이동하다 벌어졌다. ‘아악’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눈앞으로 갑자기 하늘이 솟구쳤다. 추락하는 순간 ‘난간도 잘 붙잡고 있었는데 뭘 잘못했을까’ 원인을 떠올려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자재들이 널브러진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직구명줄을 안전대에 걸지 않은 채 이동 중 실족해 추락,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알려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안전대(安全帶)는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자가 메는 보호장구다. 두 다리를 끼워 넣는 안전그네와 로프(수직구명줄), 고리로 구성됐다. 기자는 안전대 고리에 로프를 제대로 걸지 않고 걷다가 발을 헛딛자 그대로 수십 미터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두 번째 사고는 문턱 형태의 발끝막이판이 주변에 설치되지 않은 개구부(발판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추락해 일어났고, 철골 조립 작업을 하다 작업순서를 지키지 않아 하중이 한쪽으로 쏠려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추락해 세 번째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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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세 번 죽인 안전사고는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VR·Virtual Reality)에서 발생했다. VR 안전교육 프로그램 속에서다. 현실의 건설현장을 본떠 재현한 인공현실이다. 하지만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눈앞에 가상세계를 보여주는 기기를 머리에 쓰면 실제처럼 생생하다. 고개를 돌리는 대로 공사현장이 상하좌우 360도로 보인다. 공사현장 관리사무실에서 걷고 있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높은 곳의 발판을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어지러워 몸을 휘청거릴 정도다. 추락 후 설치되지 않았던 안전시설물이 붉은색 그래픽으로 표시되고 안전수칙 상식이 눈앞에 퀴즈 형식으로 나타난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 광역철도 별내선 건설현장에서 본보 김예윤 기자가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다리를 올라가는 체험을 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은 2012년부터 민간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개발했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활용한 프리젠테이션(PPT)나 동영상으로 진행되는 기존 교육방식만으로는 근로자의 주의를 끌기 어려워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최근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도 VR 안전교육 프로그램 20여 개를 자체 개발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사업비 50억 원 이상의 시가 추진하는 신규 건설현장에는 VR 안전교육을 올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별내선 공사현장에 시범 도입해 운영해본 결과 현장 근로자 48명 가운데 40명이 ‘매우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시공사인 쌍용건설의 현장 관계자는 “빨리빨리 문화가 현장에 만연하다보니 안전을 위한 시설물도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치워버리는 등 안전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VR 안전교육으로나마 사고를 경험한다면 종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설안전사고가 대부분 발생하는 영세한 공사현장은 안전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사업비 규모가 50억 원 미만이면 VR 안전교육은 도입되지 않는다. 서울시는 “소규모 공사현장을 방문하는 이동식 VR안전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해보겠다”며 “VR 기기 구매에만 400만 원이 넘게 드는 예산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시에서 자체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한 등 세부사항을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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